이토 히카루(1989년 4월 23일~)는 아이치현 오카자키시 출신(출생지는 아키타현)의 프로 야구 선수(포수)이다. 우투우타이며,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소속이다.
経歴 > プロ入り前
아이치현 오카자키시 미도리가오카의 다쓰미 유치원에 다니던 5세 때 야구를 시작했다. 오카자키 시립 후지카와 초등학교 시절에는 ‘오카자키 리틀리그’에서 투수 겸 내야수로 뛰었다. 오카자키 시립 도카이 중학교에서는 보이즈리그 ‘도메이 나고야 스타즈’에서 포수를 맡았다. 고등학교는 고치현의 메이토쿠기주쿠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입학 초기부터 감독 마부치 시로에게 ‘3년만 하면 드래프트 후보가 될 것’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재능을 인정받았고, 영재 교육의 일환으로 포수를 맡으면서 유격수와 투수에도 도전했다. 2학년 봄부터 벤치에 들어갔으며, 봄 대회 타점왕으로 고치현 선발에 뽑혀 미일 친선경기와 대만 원정 경기를 경험했다. 3학년 여름에는 선수권 고치대회 결승에서 고치 고교에 패해 준우승했다. 고교 통산 홈런은 13개. 2007년 10월 7일 열린 고교생 드래프트 회의에서 오릭스 버팔로스로부터 3순위 지명을 받았고, 계약금 5000만 엔, 연봉 500만 엔(금액은 추정)의 조건으로 입단했다. 등번호는 61번이었다.
経歴 > オリックス時代
2008년에는 웨스턴리그 공식전 43경기에 출전해 포수로 팀 최다인 40경기에서 마스크를 썼지만, 역시 팀 최다인 3포일도 기록했다. 웨스턴리그 공식전에서는 홈런을 치지 못했으나, 이스턴리그와의 팜 교류전에서는 2홈런을 기록했다. 9월 13일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전(삿포로돔)에 포수로 출전하며 1군 데뷔를 했다. 2009년에는 봄캠프부터 오픈전까지 1군에 동행했으나, 4월 14일 추간판 탈장 제거 수술을 받았다. 당초에는 약 3개월 뒤 실전 복귀를 목표로 했지만, 수술의 영향으로 왼쪽 종아리 근력이 저하되었다. 타격 때 버티지 못하는 상황 등이 이어지면서 1군과 2군 모두 실전 출전 기회가 없었다. 2010년에는 전년도 수술에 따른 재활을 거쳐 6월 초순 웨스턴리그 공식전에서 실전에 복귀했다. 첫 안타를 쳤을 때는 자신도 모르게 오열했다고 한다. 시즌 막바지에는 2년 만에 1군으로 승격해 공식전 2경기에서 선발 포수를 맡았다. 시즌 종료 후에는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에서 입단한 박찬호가 등번호 61번을 희망하면서, 자신의 등번호를 54번으로 변경했다. 2011년에는 1군 감독 오카다 아키노부로부터 ‘미래의 주전 포수 후보’로 기대를 받으며 처음으로 공식전 개막을 1군에서 맞았다. 4월 12일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와의 개막전(교세라돔 오사카)에서 선발 포수로 나섰고, 이후 경기에서도 데라하라 하야토의 3년 반 만의 완봉승과 니시 유키의 프로 첫 승에 기여했다. 여름 이후에는 에이스 가네코 치히로와 배터리를 이루는 등 선발 포수 출전 기회를 늘렸다. 한편 시즌 중에는 성적 부진 등으로 두 차례 2군에서 조정했다. 9월 11일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전(홋토모토필드 고베)에서는 수비 중 나카무라 다케야와의 크로스플레이에서 오른손 검지를 다쳤고, 이후 정밀 검사에서 골절이 확인돼 남은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1군 공식전에는 66경기에 출전했으며, 타격에서는 타율 .156, 57삼진으로 과제를 남겼다. 다만 규정 경기 수에는 미달했지만 팀 최고 도루 저지율(.318)을 기록했다. 시즌 종료 후에는 등번호를 22번으로 변경한다고 발표되었다. 2012년에는 전년에 이어 개막전 선발 포수를 맡았고, 스즈키 이쿠히로, 사이토 도시오 등과 병용되면서 출전 기회를 늘렸다. 그러나 4월 12일 지바 롯데 마린스전(QVC 마린필드) 7회초 수비 중 조시 화이트셀의 스윙 후 방망이가 오른쪽 측두부를 직격해 그라운드에 쓰러졌고,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병원에서는 타박상으로 진단받아 곧바로 실전에 복귀했지만, 공수에서 모두 부진해 같은 달 말 2군으로 내려갔다. 센트럴·퍼시픽 교류전 기간 중 다시 1군에 복귀해 선발 출전 기회를 늘렸으나, 8월 19일 소프트뱅크전(교세라돔 오사카)에서 투수진이 8회초까지 5실점하자 리드 개선을 위해 9월 하순까지 다시 2군에서 조정했다. 1군 시즌 최종전이었던 10월 8일 같은 상대와의 경기(후쿠오카 Yahoo! JAPAN 돔)에서는 포수로서 니시의 노히트 노런 달성에 기여했다. 전년과 같은 66경기에 출전해 타율 .205, 10타점을 기록했다. 시즌 종료 후에는 오릭스 선수회 부회장에 취임했다. 2013년에는 스즈키의 은퇴 및 코치 취임, 히다카 쓰요시의 FA권 행사에 따른 한신 타이거스 이적을 배경으로 개막부터 주전 포수로 자리 잡았다. 올스타 게임에도 퍼시픽리그 포수 부문 팬 투표 1위로 처음 출전했다. 타격에서는 개막부터 6월까지 3할에 가까운 타율을 기록하는 등 좋은 흐름을 보였다. 8월에는 25타석 연속 무안타에 빠졌지만, 9·10월 월간 타율 .330으로 회복했고 10월 5일과 6일 롯데전(모두 QVC 마린필드)에서 2경기 연속 홈런을 치는 등 개인 최다인 3홈런을 기록했다. 처음으로 규정 타석에 도달했으며, 시즌 통산 개인 최고 타율인 .285를 남겼다. 최종적으로 137경기에 출전해 시즌 전에 목표로 내걸었던 ‘100경기 출장’을 달성했고, 오릭스 포수로서는 2008년 히다카 이후 처음으로 1군 공식전 100경기 이상 출전을 기록했다. 시즌 종료 후인 11월 대만에서 열린 ‘2013 BASEBALL CHALLENGE 일본 VS 차이니즈 타이페이’에는 일본 대표로 출전했다. 2014년에는 전년과 마찬가지로 137경기에 출전했으나, FA권 행사로 소프트뱅크에서 이적한 야마사키 가쓰키와 병용된 영향으로 규정 타석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그래도 투수진이 리그 최고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는 데 수비에서 기여했고, 베스트 나인, 골든글러브상, 최우수 배터리상을 수상했다. 타격에서는 타율이 전년보다 낮아졌지만, 전년을 웃도는 48타점을 올렸다. 시즌 종료 후 11월에 열린 미일야구 2014에는 일본 대표의 일원으로 출전했다. 또한 사카구치 도모타카로부터 선수회장직을 이어받는 것도 발표되었다. 2015년에는 ‘GLOBAL BASEBALL MATCH 2015 사무라이 재팬 대 유럽 대표’의 일본 대표로 3월 11일 2차전(도쿄돔)에 출전했다. 개막 후에도 초반에는 선발 포수를 맡았지만, 리드 면의 부진으로 4월 하순부터 야마사키에게 선발 포수 자리를 내주는 경기가 이어졌고, 5월 8일부터 재조정을 위해 2군으로 내려갔다. 8월 5일 롯데전(QVC 마린필드)에서는 0-0으로 맞선 9회말 무사 3루에서 자신의 포일로 팀이 끝내기 패배를 당했다. 퍼시픽리그에서는 롯데의 사다즈메 마사히코가 1994년 6월 12일 오릭스전에서 기록한 이후 사상 4번째(당시) 사례였고, 오릭스에서는 1988년 4월 19일 난카이전(오사카 스타디움)의 우치다 쓰요시 이후 2번째였다. NPB 1군 공식전에서 포일로 0-1 끝내기 패배를 당한 사례는 다이요 웨일스의 도이 아쓰시가 1956년 6월 14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전에서 기록한 이후 2번째이며, 퍼시픽리그에서는 사상 처음이었다. 출전 경기 수는 104경기로 최근 2년보다 줄었다. 규정 타석에는 도달하지 못했지만 타율 .271을 기록했고, 포수로서 2년 연속 리그 최다 수비율을 남겼다. 시즌 종료 후 11월에 열린 제1회 WBSC 프리미어12에는 9월 시점에서 일본 대표 최종 후보로 선출되었으나 최종 로스터에는 들지 못해 대회에 출전하지 않았다. 2016년에는 개막부터 선발 포수를 맡았으나, 리드 면의 과제를 이유로 4월 15일 출전 선수 등록이 말소되었다. 이후에도 와카쓰키 겐야의 성장으로 출전 기회가 줄어 1군과 2군을 오가는 일이 이어졌다. 2군에서 조정 중이던 7월 27일에는 고베 종합운동공원 서브 구장에서 열린 소프트뱅크와의 웨스턴리그 공식전에 ‘5번·1루수’로 선발 출전했다. 1군에서도 8월 6일 롯데전(교세라돔 오사카) 8회말 대타로 나선 뒤 9회초부터 처음으로 1루 수비에 들어가는 등, 지명타자와 1루수로 출전하는 경우가 늘어난 시즌이었다. 2017년에는 와카쓰키보다 나은 타력을 살리면서 가네코 등판 경기 이외에도 출전 기회를 늘리기 위해, 포수 등록을 유지한 채 춘계 캠프부터 3루수 수비 연습을 시작했다. 2017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개막 직전인 3월 5일 교세라돔 오사카에서 열린 오릭스와 일본 대표의 강화경기에는 ‘7번·3루수’로 선발 출전했다. 3월 31일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와의 개막전(교세라돔 오사카)에서는 가네코가 선발 등판했지만, 본인은 가네코가 강판된 뒤인 6회초부터 포수로 출전했다. 다음 날인 4월 1일 개막 2차전에서는 1군에서 처음으로 3루수로 선발 출전했고, 이후에도 와카쓰키를 포수, 이토 히카루를 3루수로 동시에 선발 기용하는 경기가 이어졌다. 시즌 중반부터는 주전 3루수 고야노 에이이치의 회복세와 1루 수비도 가능한 크리스 마레로의 영입 등으로 내야수 출전 기회가 줄었다. 동시에 와카쓰키의 타격 부진도 있어 8월 이후에는 니시나 야마오카 다이스케가 선발 등판하는 경기에서도 선발 포수로 나섰다. 시즌 전체로는 103경기에 출전했으며, 포수로는 와카쓰키(99경기)에 이어 93경기에 기용되었고 10경기에서 3루, 2경기에서 1루 수비를 맡았다. 타격에서는 개인 최다인 시즌 5홈런을 기록했으나, 타율은 2011년 이후 처음으로 1할대에 그쳤다. 9월 9일 라쿠텐전(Kobo 파크 미야기)에서 안타를 친 뒤에는 27타석(25타수) 연속 무안타로 시즌을 마쳤다. 2018년에는 춘계 캠프부터 포수에 전념했다. 개막 초반에는 와카쓰키와 병용되었지만, 선발 포수로 나선 4월 17일 롯데전(ZOZO 마린 스타디움) 종료 후 출전 선수 등록이 말소되었다. 동점이던 5회말 1사 2·3루에서 자신의 포일로 역전점을 허용했고, 전년 후반부터 이어진 연속 무안타도 이 경기에서 45타석(41타수)에 이르는 등 개막 이후 공수 양면에서 뚜렷한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経歴 > DeNA時代
2018년 7월 9일, 다카조 도시히토·시라사키 히로유키와의 트레이드로 아카마 겐과 함께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로 이적하는 것이 발표되었다. 등번호는 29번. 팀의 후반기 첫 경기였던 7월 16일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전(요코하마 스타디움)에 ‘7번·포수’로 선발 출전하며 센트럴리그 공식전에 처음 나섰다. 올스타 게임 직전의 긴급 트레이드였기 때문에 레가스와 프로텍터 준비가 늦어졌고, 같은 계열의 파란색을 사용하는 오릭스 시절 용구를 착용한 채 포수 수비에 들어갔다. 2회초 유헤이가 시도한 2루 도루를 저지했고, 그 이닝 말 이적 후 첫 타석에서는 오가와 야스히로를 상대로 중전 안타를 기록했다. 이로써 오릭스 시절인 2017년부터 이어지던 1군 공식전 연속 타석 무안타 기록을 49타석에서 끊었다. 이후에도 미네이 히로키 등과 병용되었으나, 구단이 기대했던 주전 포수 정착에는 이르지 못했고, 통산 47경기 출전에 1홈런, 11타점, 타율 .195의 성적에 그쳤다. 2019년에는 같은 성을 가진 이토 유키야가 입단하면서 스코어보드 표기가 ‘이토 히카루’, 유니폼 등명이 ‘H.ITOH’로 각각 변경되었다. 이 표기는 2022년 도중 유키야가 라쿠텐으로 이적한 뒤에도 유지되었다. 정규시즌 전반기에는 사실상 주전 포수로 자리 잡았다. 이적 첫해에는 저조했던 타격도 하위 타선에서 종종 좋은 타구를 날리는 등 호조를 보였다. 7월 27일 주니치 드래곤즈전(나고야돔)에서는 1회초 첫 타석에서 마쓰자카 다이스케, 2회초 두 번째 타석에서 미쓰마 다쿠야에게 사구를 맞았으나, 3회초 세 번째 타석에서 미쓰마를 상대로 안타를 쳤다. 그러나 다음 카드인 7월 30일 야쿠르트전(요코하마) 9회초 수비 중 상대 타자의 파울 타구가 왼손에 맞아 약지 박리골절을 입었고, 다음 날인 31일 출전 선수 등록이 말소되었다. 9월 초부터 전열에 복귀해 팀의 정규시즌 2위에 기여했다. 1군 공식전 84경기에 출전해 개인 최다인 8홈런, 타율 .254, 27타점을 기록했고, 오릭스 시절인 2014년 이후 5년 만에 클라이맥스 시리즈(CS)에도 출전했다. 한편 정규시즌 중 국내 FA권 취득 조건을 충족했으나, 팀이 CS 퍼스트 스테이지에서 패한 직후인 10월 23일 이 권리를 행사하지 않고 팀에 잔류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구단과의 계약 교섭에서 DeNA 선수로는 역대 최장인 4년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 기간 중 연봉 총액은 추정 4억5000만 엔이며, 성적에 따른 인센티브 조항도 포함되었다. 2020년에는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의 정규시즌 개막전 및 2차전(모두 마쓰다 스타디움)에서 감독 알렉스 라미레스의 지명으로 선발 포수를 맡았으나, 투수진이 2경기 합계 15실점을 내주며 팀은 연패했다. 7월 18일 요미우리전(요코하마)에서는 선발 출전했지만 3회초 수비부터 교체되었다. 라미레스가 ‘이마나가 쇼타와의 호흡이 코칭스태프가 세운 방향대로 기능하지 않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며, 다음 날인 19일 출전 선수 등록이 말소되자 일부에서는 ‘이토의 리드에 불만을 품은 라미레스의 징계성 2군 강등’으로 보도했다. 게다가 강등 후인 7월 28일 이스턴리그 라쿠텐전에서 주루 도중 오른발을 다쳐 경기 중 교체되었고, 이후 근육 파열로 밝혀져 1군 복귀는 시즌 후반인 9월 하순까지 늦어졌다. 이 해 1군 공식전 출전은 이적 후 최소인 30경기에 그쳤고, 타율 .216, 0홈런, 6타점으로 4년 계약의 첫해를 마쳤다. 12월 8일 계약 교섭에서는 현상 유지 조건(추정 연봉 1억1250만 엔)으로 재계약했다. 라미레스는 이 해를 끝으로 감독에서 물러났지만, 이토는 재계약 후 기자회견에서 ‘감독이 생각하는 것을 경기에서 표현하는 것이 포수인 만큼, 올 시즌 같은 일을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다’는 말로 아쉬움을 드러냈다. 2021년에는 3월 18일 교육리그 야쿠르트전에서 왼쪽 종아리 근육 파열 부상을 입어 정규시즌 개막을 2군에서 맞았고, 1군 합류는 센트럴·퍼시픽 교류전 직전인 5월 18일로 늦어졌다. 이 해부터 1군 감독을 맡은 미우라 다이스케는 이토 히카루의 풍부한 경험, 우타자로서 희생번트까지 소화하는 타격, 상대 투수에게 많은 투구 수를 던지게 하는 타석에서의 끈기를 높게 평가했다. 교류전 개막을 계기로 이토 히카루를 ‘2번·포수’로 선발 라인업에 고정했다. 교류전에서는 통산 타율 .263이었지만 팀 2위인 11볼넷·사구를 기록한 영향으로 팀 3위의 출루율 .382를 남겼고, 팀 야수로는 7년 만인 3타석 연속 희생번트, 팀 포수로는 시즌 1군 공식전 첫 도루도 기록했다. 개막 후 교류전 시작 전까지 승률 .293으로 센트럴리그 하위권에 머물던 팀도, 이토 히카루가 출전한 교류전 13경기에서는 승률 .643(9승 5패 3무)으로 상승세를 탔다. 그러나 6월 22일 요미우리전에서 허리 통증으로 경기 도중 교체되었다. 이후 복귀해 1군 경기에 계속 출전했지만 타율이 계속 떨어졌고, 후반기에는 야마모토 유다이와 도바시라 야스타카에게 선발 자리를 내주는 경우도 많았다. 9월 28일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전 6회말에는 타자 무라카미 무네타카의 파울볼이 마스크를 정통으로 맞아, 다음 날인 29일 등록이 말소되었다. 도쿄 시내 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결과 턱 타박상과 뇌진탕 증상이 있어 뇌진탕 특별 조치가 적용되었다. 이어 10월 11일에는 요코하마 시내 병원에서 오른쪽 어깨 클리닝 수술을 받았다는 사실이 발표되었고, 이후 경기에 출전하지 못한 채 시즌을 53경기, 타율 .213, 2홈런, 13타점으로 마쳤다. 2022년에는 개막부터 다른 포수들과 병행 출전했으나, 4월 7일 왼쪽 다리 근육 뭉침으로 등록이 말소되었다. 복귀를 목표로 2군에서 조정을 이어가던 중 5월 20일 발열 등의 증상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양성 판정을 받아 이탈 기간이 길어졌고, 복귀도 더 늦어졌다. 재활과 요양을 거쳐 6월 21일 1군에 합류했다. 6월 23일 요미우리전(도쿄돔)에서 선발 복귀해, 개막 후 승리가 없고 부진에 빠져 있던 아즈마 가쓰키와 배터리를 이뤄 6이닝 3실점으로 경기를 만들도록 이끌었다. 타석에서도 3안타로 활약하며 아즈마의 시즌 첫 승을 도왔다. 이탈 기간 동안 미네이 히로키가 주로 선발 포수를 맡으면서 출전 기회는 줄었지만, 타격 컨디션이 좋아 8월 3일 히로시마전(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는 오릭스 시절 이후 5년 만에 1루수로 선발 출전했다. 팀이 연승을 이어가며 2위로 올라서던 8월 20일 히로시마전에서는 동점을 허용한 직후인 8회 2사 1·3루 찬스에서 풍부한 경험을 인정받아 대타로 기용되었고, 결승타를 때려 구단 기록인 홈구장 16연승(이후 최대 17연승까지 기록)에 기여했다. 2위로 맞이한 클라이맥스 시리즈 퍼스트 스테이지에서는 10월 9일 두 번째 경기에서 오누키 신이치와 배터리를 이뤄 선발 출전했고, 한신 타선을 상대로 1-0 완봉승을 이끄는 좋은 리드를 보였다. 2023년에는 개막부터 도바시라, 야마모토와 병행 기용되었고, 야마모토가 두각을 나타내면서 점차 선발 기회가 줄었다. 다만 사이 영상을 수상한 투수의 합류로 화제가 된 트레버 바우어의 전담 포수 역할을 시즌 내내 맡았다. 8월 6일 한신 타이거스전(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통산 1000경기 출전을 달성했다. 8월 15일 야쿠르트전(메이지진구 야구장)에서는 2년 만의 홈런으로 선발 바우어를 지원하며 승리에 기여했다. 홈구장 마지막 경기였던 10월 1일 주니치전에서는 오누키 신이치와 배터리를 이뤄 오누키의 매덕스(100구 미만 완봉) 달성을 도왔다. 4년 계약이 끝난 뒤 보유하고 있던 해외 FA권은 행사하지 않았고, 오프시즌에는 감액 제한을 넘는 4750만 엔 삭감의 6500만 엔에 옵션이 붙은 새 2년 계약을 맺었다. 2024년에는 야마모토가 주전 자리를 굳히면서 출전 기회가 줄었고, 7월 15일에는 2군에서 활약하던 신예 마쓰오 시온과 맞교환되는 형태로 1군 등록이 말소되었다. 2군에서는 14경기에 출전해 타율 .341, 1홈런의 좋은 성적을 남겼고, 8월 20일 다시 1군에 합류했다. 9월 6일 히로시마전(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는 연장 11회 2사 만루에서 타석에 들어서 마쓰모토 류야를 상대로 밀어내기 볼넷을 골라내 팀에 승리를 안겼다. 9월 15일 야마모토가 사구를 맞아 골절로 이탈하자, 다음 날인 16일 히로시마전에서는 야마모토와 자주 배터리를 이뤘던 아즈마 가쓰키와 2년 만에 배터리를 구성했다. 타석에서도 3안타 2타점으로 활약해 팀 승리를 이끌며 CS 경쟁 중이던 팀의 위기를 구했다. CS에서는 10월 12일 아즈마가 선발 등판한 한신과의 퍼스트 스테이지 1차전에 선발 출전했으나, 16일 경기 전 훈련에서 왼쪽 종아리 통증을 호소했고, 근육 파열 진단을 받아 다음 날 등록이 말소되었다. 말소 후에도 팀에 동행하며 선수들을 독려했고, 팀의 26년 만의 일본 시리즈 우승을 지켜봤다. 2025년에는 2군에서 개막을 맞았다. 2군에서 타율 3할대를 유지하며 타격감이 좋았지만, 1군 포수진인 야마모토, 마쓰오, 도바시라가 모두 호조를 보이고 있어 1군 승격 기회를 얻지 못했다. 2군 경기 36경기에 출전해 타율 .343, 2홈런, 16타점을 기록하던 중, 1군이 연패 중이던 6월 18일 시즌 처음으로 1군에 등록되었다. 28일에는 2년 전 자주 배터리를 이뤘던 바우어와 함께 선발 출전했으나 팀을 승리로 이끌지는 못했다. 이후 대타 기용을 중심으로 6경기에 출전했지만 9타수 무안타에 그쳤고, 7월 2일 등록이 말소되었다. 시즌 종료 후에는 해외 FA권을 행사했다.
経歴 > 楽天時代
11월 18일,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로의 이적이 발표되었다. 등번호는 이번 시즌까지 오카지마 다케로가 달았던 27번으로 정해졌다.
選手としての特徴 > 打撃
2013년에 타율 .285, 2019년에 규정 타석 미달에도 8홈런·OPS .731을 기록하는 등 오릭스와 DeNA 시절을 통틀어 강타력을 갖춘 포수로 평가받았다. 다만 젊은 시절에는 많은 삼진과 낮은 타율이 과제로 지적되었다.
選手としての特徴 > 守備・走塁
장거리 송구 120미터의 강한 어깨를 갖췄으며, 포수임에도 50미터를 6초 플랫에 달리는 준족도 겸비하고 있다. 오릭스 시절에는 앞서 서술한 대로 1루와 3루 수비도 맡았다. DeNA 이적 후에는 포수 출전이 이어졌지만, 2022년 8월 3일 경기에서 이적 후 처음으로 1루수로 출전했다.
詳細情報 > 表彰
베스트 나인: 1회(포수 부문: 2014년) ※포수 부문에서 헤이세이 시대 출생자 최초 수상 골든글러브상: 1회(포수 부문: 2014년) ※포수 부문에서 헤이세이 시대 출생자 최초 수상 최우수 배터리상: 1회(2014년, 투수: 가네코 치히로)
詳細情報 > 記録
첫 기록 첫 출장: 2008년 9월 13일, 대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 20차전(삿포로돔), 7회말 히다카 쓰요시를 대신해 포수로 출전 첫 선발 출장: 2010년 9월 28일, 대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 24차전(교세라돔 오사카), ‘8번·포수’로 선발 출전 첫 타석: 위와 같음, 3회말 다케다 마사루를 상대로 3루수 땅볼 첫 안타: 2011년 4월 13일, 대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2차전(교세라돔 오사카), 3회말 D.J. 홀튼을 상대로 우전 안타 첫 도루: 2011년 4월 17일, 대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3차전(한신 고시엔 구장), 5회초 2루 도루(투수: 도무라 겐지, 포수: 이노 다쿠) 첫 타점: 2011년 4월 20일, 대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 2차전(홋토모토필드 고베), 2회말 브라이언 울프를 상대로 3루수 실책 사이 기록 첫 홈런: 2011년 5월 25일, 대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1차전(메이지진구 야구장), 9회초 마쓰이 고스케를 상대로 좌월 솔로 홈런 이정표 기록 1000경기 출장: 2023년 8월 6일, 대 한신 타이거스 17차전(요코하마 스타디움), ‘8번·포수’로 선발 출전 ※역대 522번째 그 외 기록 올스타 게임 출장: 2회(2013년, 2014년) 전 구단 상대 홈런: 2026년 6월 2일, 대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 1차전(요코하마 스타디움), 9회초 사카모토 유야를 상대로 중월 솔로 홈런 ※역대 49번째, 통산 31호 홈런으로 달성한 것은 역대 최소
詳細情報 > 背番号
61(2008년~2010년) 54(2011년) 22(2012년~2018년 7월 10일) 29(2018년 7월 11일~2025년) 27(2026년~)
출처: 일본어 위키백과 (CC BY-SA 4.0 · 번역 2026-0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