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니시 나오키(1985년 6월 2일~)는 효고현 아마가사키시 출신의 프로 야구 선수(투수)이다. 좌투좌타이며,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소속이다. 공식전 통산 홀드와 통산 홀드포인트의 NPB 기록 보유자로, “두 부문에서 세계 프로야구 기록 보유자”로도 여겨진다. 또한 최우수 중간계투 투수 타이틀을 통산 3회 획득했으며, 이 횟수도 최우수 중간계투 투수 부문 역대 최다 타이 기록이다(모두 2023년 시즌 종료 시점). 오노 쇼타와는 닛폰햄에서 한때 배터리를 이뤘으며, 서로의 아내가 친자매인 쌍둥이라는 인척 관계이기도 하다.
経歴 > プロ入り前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야구를 시작했다. 중학교 시절에는 보이즈리그의 아마가사키 보이즈에 소속되어 미나미오사카 대회 우승을 경험했다. 아마가사키 시립 아마가사키 고등학교 진학 후에는 한 학년 선배이자 같은 좌완 투수인 가네토 노리히토와 함께 주목받았으나, 2학년 여름 현 대회에서는 준결승에서 가네토가 완투했음에도 아깝게 패했다. 가을에는 현 대회 베스트 4에 올랐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고향의 간사이 가쿠인 대학 상학부로 진학했다. 한 학년 선배로 시미즈 호마레, 동기로 오기노 다카시, 한 학년 후배로 기시 게이스케가 있다. 간사이 학생야구 리그전에서는 1학년 가을부터 벤치에 들었다. 2학년 봄 리그전에서는 선발과 구원을 오가며 기용되는 가운데 48⅓이닝 연속 무실점의 리그 기록을 세웠고, 최우수 투수로 선정되었다. 재학 중에는 리그전 통산 46경기에 등판해 19승 13패, 평균자책점 1.58, 291탈삼진의 성적을 남겼다. 대학 3학년 때부터는 구속을 높이려다 투구 폼이 무너지면서 성적이 정체됐다. 한편 제16회 IBAF 인터콘티넨탈컵과 베이징 프리올림픽 야구 일본 대표 등으로 일본 대표에 4차례 선출되었다. 4학년이던 2007년 NPB 대학생·사회인 드래프트 회의에서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의 3순위 지명을 받아 계약금 7000만 엔, 연봉 1000만 엔(연봉은 추정) 조건으로 입단했다. 미야니시 나오키는 훗날 “대학 3학년 때부터 기대만큼 성적을 남기지 못해 내리막에 있을 때 야마다 마사오 GM이 나를 받아주셨다. 감사한 마음뿐이다”라고 말했다. 등번호는 그해를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한 다테이시 나오유키가 달았던 25번이 되었다.
経歴 > 日本ハム時代
2008년에는 개막을 1군에서 맞았고, 3월 25일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전에서 프로 첫 등판을 해 1이닝 1피안타 1사구 2탈삼진 무실점으로 막았다. 4월 4일 오릭스 버팔로즈전에서 프로 첫 홀드를, 5월 11일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전에서는 프로 첫 승리를 기록했다. 7월 들어 6경기 등판에서 2패를 당하고 합계 3⅔이닝 9실점으로 크게 부진했지만, 좌완 릴리프가 부족한 팀 사정도 있어 1군 등판을 이어갔다. 시즌 종반에 다시 평균자책점이 나빠졌으나, 루키 시즌에는 한 시즌 내내 1군에 동행하며 50경기에 등판해 2승 4패 8홀드, 평균자책점 4.37을 기록했다. 포스트시즌에서는 세이부와의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에서 2경기에 등판했다. 오프시즌에는 두 배로 오른 추정 연봉 2000만 엔에 계약을 갱신했다. 2009년에도 개막 1군에 들었다. 8월 16일 세이부전에서는 연장 10회초를 무실점으로 막았고, 직후 팀이 끝내기 승리를 거두면서 승리투수가 되었다. 개막부터 41경기에 등판해 6승 0패 8홀드, 평균자책점 1.78을 기록하고 있었으나, 같은 달 18일 출전 선수 등록이 말소되었고 구단은 그가 신형 인플루엔자에 감염됐다고 발표했다. 8월 28일 1군에 복귀하자마자 같은 날 소프트뱅크전에서 1점 앞선 6회초 2사 1·2루 상황에 등판해, 이닝을 넘겨 1⅓이닝 동안 3탈삼진의 퍼펙트 릴리프를 펼쳤다. 선발 후지이 슈고가 4⅓이닝 만에 강판되어 있었기 때문에 공인 야구 규칙 9.17(b) 원주에 따라 미야니시 나오키가 승리투수가 되었고, 개막 이후 무패 7연승을 기록했다. 복귀 후에는 시즌 종료까지 불펜의 한 축을 맡았으며, 이 해에는 팀 최다 타이인 58경기에 등판해 7승 2패 13홀드, 평균자책점 2.89를 기록하며 팀의 리그 우승에 공헌했다. 포스트시즌에서는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와의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에서 1경기에 등판했고,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일본시리즈에서는 1차전부터 4경기 연속 등판했다. 다만 5차전에서는 왼쪽 어깨에 위화감을 느껴 만일에 대비해 등판을 피했고, 이후 등판 기회는 없었다. 11월 25일 계약 갱신 교섭에서는 희망했던 두 배 이상 인상에 미치지 못해 보류했다. 12월 3일 두 번째 계약 갱신 교섭이 열렸고, 이전과 같은 제시액인 1800만 엔 인상, 추정 연봉 3800만 엔에 사인했다. 2010년에는 3년 연속 개막 1군에 들었다. 5월 19일 요미우리전에서는 2점 앞선 9회초를 맡아 1이닝 1사구 1탈삼진 무실점으로 막고 프로 첫 세이브를 올렸다. 셋업맨으로 개막부터 48경기에 등판해 2승 1패 18홀드 1세이브, 평균자책점 1.33을 기록하고 있었으나, 8월 21일 등록이 말소되었다. 안과 진료 결과 바이러스성 결막염 진단을 받았고, 전염성이 있어 의사로부터 격리 요양 지시를 받았다. 같은 달 31일 1군에 복귀한 뒤에는 다시 셋업맨을 맡았고, 이 해에는 팀 최다인 61경기에 등판했다. 2승 1패 23홀드 1세이브, 평균자책점 1.70의 좋은 성적을 거두었으며, 오프시즌에는 3000만 엔 인상된 추정 연봉 6800만 엔에 계약을 갱신했다. 2011년에는 동일본대지진의 영향으로 개막이 4월 12일로 연기되었다. 개막은 1군에서 맞았으나 피홈런으로 패전투수가 되는 등판이 눈에 띄었고, 개막부터 10경기에서 0승 2패 4홀드, 평균자책점 3.72로 다소 안정감이 부족했다. 5월 8일 소프트뱅크전부터 7월 1일 세이부전까지 13경기 연속 무실점을 기록하는 등 이후에는 회복세를 보이며 시즌 내내 불펜의 한 축을 맡았다. 다만 사카키바라 료, 마스이 히로토시, 다케다 히사시로 이어지는 승리 패턴이 확립되어 있었기 때문에 전년보다 홀드 기회는 줄었다. 그래도 이 해에도 팀 최다인 61경기에 등판해 1승 2패 14홀드, 평균자책점 2.21을 기록했다. 오프시즌에는 2200만 엔 인상된 추정 연봉 9000만 엔에 계약을 갱신했다. 2012년에는 5년 연속 개막 1군에 들었고, 사카키바라 료가 오른쪽 어깨 통증으로 시즌 초반 이탈한 영향도 있어 셋업맨으로 자리 잡았다. 맹활약을 펼쳤지만 다소 과도한 등판이 이어진 탓에, 9월 13일 지바 롯데 마린즈전에서는 오른쪽 무릎을 다쳐 ⅓이닝 2피안타 2사사구 3실점으로 강판되었다. 시즌 종반에는 실점이 다소 늘었으나 이탈 없이 시즌을 완주했다. 이 해에는 개인 최다인 66경기에 등판해 2승 2패 39홀드, 평균자책점 2.25의 좋은 성적을 거두며 팀의 리그 우승에 공헌했다. 포스트시즌에서는 요미우리와의 일본시리즈에서 4경기에 등판했다. 오프시즌에는 3000만 엔 인상된 추정 연봉 1억2000만 엔에 계약을 갱신했다. 2013년에도 개막을 1군에서 맞았으나, 왼쪽 어깨 통증의 영향으로 제 컨디션이 아니었다. 개막부터 11경기에서 0승 0패 2홀드, 평균자책점 5.91로 불안정한 투구가 이어졌다. 그러나 이후 회복세를 보이며 13경기 연속 무실점을 기록했다. 이어 7월 4일 소프트뱅크전부터 9월 11일 오릭스전까지 25경기 연속 무실점, 8월 23일 오릭스전부터 9월 30일 롯데전까지 12경기 연속 홀드도 기록했다. 이 해에는 57경기에 등판해 3승 1패 30홀드, 평균자책점 1.74의 좋은 성적을 올렸고, 오프시즌에는 2000만 엔 인상된 추정 연봉 1억4000만 엔에 계약을 갱신했다. 2014년에는 7년 연속 개막 1군에 들었고, 8월 19일 국내 FA권을 취득했다. 8월 종료 시점까지 56경기에 등판해 1승 5패 36홀드, 평균자책점 2.35로 풀가동하고 있었으나, 9월 3일 왼팔꿈치 염증으로 등록이 말소되었다. 9월 13일 1군에 복귀했지만, 같은 달 29일 세이부전에서는 왼쪽 정강이 통증을 호소하며 도중 강판되었고, 다음 날인 30일 다시 등록이 말소되었다. 그대로 정규시즌을 마쳤으나, 이 해에는 62경기에 등판해 1승 5패 41홀드, 평균자책점 2.16의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왼쪽 정강이 안쪽은 피로골절 상태였지만 포스트시즌에서 1군에 복귀했고, CS에서는 오릭스와의 퍼스트 스테이지에 2경기, 소프트뱅크와의 파이널 스테이지에 1경기 등판했다. 오프시즌에는 국내 FA권 행사 여부를 숙고했으나, 11월 8일 권리를 행사하지 않고 잔류하겠다고 발표했다. 구단과는 복수년 계약을 맺었으며, 추정 연봉 1억8000만 엔에 인센티브 2000만 엔을 더한 조건으로 사인했다. 또한 11월 22일 열린 팬 페스티벌에서는 구리야마 히데키 감독이 미야니시 나오키의 주장 취임을 발표했다. 2015년에는 3월 초 왼팔꿈치 통증이 생겼다. 왼쪽 팔꿈치에는 피와 물이 고여 있었고, “왼팔꿈치 신경에 유리연골이 닿고 있었다. 수치로는 모르겠지만 왼손 악력은 완전히 약해져서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매 경기 후 피와 물을 빼는 생활이 2개월은 계속됐다. 평소 일상생활에서도 아팠다”는 상태였다. 그러나 FA 이적을 고민하다 잔류했고 주장으로 지명된 책임감도 있어, “참을 수 있으니 1년간 던지게 해달라”고 구리야마 히데키 감독과 구단에 무리를 감수하겠다고 탄원했다. 그렇게 8년 연속 개막 1군에 들었다. 구원 실패도 눈에 띄었지만 전반기 종료 시점에 31경기 등판, 1승 2패 18홀드, 평균자책점 2.84를 기록했고, 감독 추천으로 처음 올스타에 선출되어 올스타 제1전에 다섯 번째 투수로 등판했다. 9월 22일 시즌 50번째 등판을 했고, 다음 날인 23일 등록이 말소되었다. 롯데와의 CS 퍼스트 스테이지에는 벤치에 들어갔으나 등판 기회는 없었다. 이 해 정규시즌에서는 50경기에 등판해 3승 3패 25홀드, 평균자책점 2.70을 기록했다. 10월 20일, CS 탈락 8일 뒤에는 왼팔꿈치 클리닝 수술과 신경 이동술을 받았고, 실전 복귀까지 약 5개월이 걸릴 전망이라고 발표되었다. 12월 4일에는 계약 갱신 교섭을 진행해 1000만 엔 인상된 추정 연봉 1억9000만 엔에 인센티브를 더한 조건으로 사인했다. 21일에는 자택 부근에서 넘어져 오른손 제5중수골이 골절되었다. 한편 이 해 맡았던 주장직에 대해서는 구리야마 감독이 “미야니시의 책임감이 강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수술한 왼팔꿈치를 확실히 낫게 하고 개막을 향해 집중해 주는 것이 팀을 위한 일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으며, 다음 해에는 오노 쇼타가 주장을 맡게 되었다. 2016년에는 3월 17일 2군 경기에서 수술 후 실전에 복귀했고, 이후 오픈전에도 등판했으나 프로 입단 후 처음으로 개막을 2군에서 맞았다. 4월 8일 출전 선수로 등록되었고, 다음 날인 9일 라쿠텐전에서 시즌 첫 등판을 했다. 그러나 타자 3명을 상대로 1피안타 1볼넷을 허용한 뒤 강판되었고, 뒤이어 등판한 다카나시 히로토시가 주자를 불러들이면서 ⅓이닝 2실점이 되었다. 하지만 이후 전반기 종료 때까지 무실점 투구를 이어가며 29경기 연속 무실점을 기록했다. 8월 23일 롯데전에서는 마무리 투수 마틴의 휴식에 따라 3점 앞선 9회말에 등판해 무실점으로 막고 6년 만에 세이브를 올렸다. 9월 들어 마틴이 왼쪽 발목 염좌로 이탈했고, 미야니시도 9월 24일 라쿠텐전에서 오른쪽 발목을 다쳤지만, 팀이 매직 3으로 맞이한 같은 달 26일 오릭스전에서도 마무리를 맡아 1점 차를 지켜내며 세이브를 기록했다. 이 해에는 셋업맨으로 풀가동하며 58경기 등판, 3승 1패 39홀드 2세이브, 평균자책점 1.52의 좋은 성적을 거두고 팀의 4년 만의 리그 우승에 기여했다. 또한 42홀드포인트로 자신의 첫 타이틀인 최우수 중간계투 투수에 올랐다. 포스트시즌에서도 셋업맨을 맡았고,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의 일본시리즈 4차전에서는 세이브도 올리는 등 팀의 10년 만의 일본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시즌 종료 후에는 일본 대표 강화 경기에 출전했다. 오프시즌에는 1000만 엔 인상된 추정 연봉 2억 엔에 계약을 갱신했다. 2017년에는 WBC 출전을 거쳐 2년 만에 개막 1군에 들었으나, 4월에는 3차례 복수 실점을 기록하는 등 8경기 등판, 평균자책점 8.10으로 부진했다. 5월 이후에는 회복해 시즌 내내 1군에 동행했지만, 제 역할을 하지 못하거나 패전투수가 되는 경기가 적지 않았고, 팀의 침체도 겹치면서 전년보다 홀드 수가 줄었다. 이 해에는 51경기에 등판해 4승 5패 25홀드, 평균자책점 3.32를 기록했다. 오프시즌에는 전년에 취득한 해외 FA권을 행사해 MLB에 도전하는 것도 염두에 두었으나, 11월 8일 권리를 행사하지 않고 잔류하겠다고 발표했다. 구단과는 단년 계약을 맺었고, 5000만 엔 삭감된 추정 연봉 1억5000만 엔에 인센티브를 더한 조건으로 사인했다. 2018년에도 개막 1군에 들었다. 4월 8일 롯데전에서는 등 쪽의 뻐근함을 호소해 긴급 강판했고, 6월 초순에는 컨디션 난조가 있었으나 어느 경우도 장기 이탈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6월 24일 종료 시점에는 25경기에 등판해 2승 0패 15홀드, 평균자책점 1.93의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었고, 다음 날인 25일 팬 투표로 3년 만이자 두 번째로 올스타에 선출되었다. 7월 6일 롯데전에서 홀드를 기록하며 야마구치 데쓰야가 보유하고 있던 통산 홀드 수 NPB 기록(273홀드)을 경신했다. 9월 27일 오릭스전에서도 홀드를 기록해 야마구치가 보유하고 있던 통산 홀드포인트 수 NPB 기록(324홀드포인트)을 경신했다. 이 해에는 55경기에 등판해 4승 3패 37홀드, 평균자책점 1.80의 좋은 성적을 거두었고, 팀의 2년 만의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에 공헌했다. 또한 41홀드포인트로 2년 만이자 두 번째로 최우수 중간계투 투수에 선정되었다. 포스트시즌에서는 소프트뱅크와의 클라이맥스 시리즈 퍼스트 스테이지에 1경기 등판했다. 시즌 종료 후인 11월 5일에는 왼팔꿈치 골극 활막 절제 수술을 받았고, 완치까지 3~4개월이 걸릴 전망이라고 발표되었다. 전년에 이어 해외 FA권 행사도 염두에 두었지만, 11월 9일 권리를 행사하지 않고 잔류하겠다고 발표했다. 구단과는 인센티브를 포함해 최대 총액 5억 엔의 2년 계약을 맺고, 5000만 엔 인상된 추정 연봉 2억 엔에 인센티브를 더한 조건으로 계약했다. 2019년에는 3월 10일 오픈전에서 수술 후 실전에 복귀했고, 3년 연속 개막 1군에 들었다. 본인은 “올해 팔꿈치 상태는 최악이었고, 생각했던 것보다 힘들었다”고 회상했으며, 왼팔꿈치 상태를 고려해 등판 간격을 조절하는 시즌을 보냈다. 그럼에도 6월 23일 종료 시점에 28경기에 등판해 1승 1패 23홀드, 평균자책점 1.88의 좋은 성적을 거두었고, 다음 날인 24일 팬 투표로 2년 연속이자 세 번째로 올스타에 선출되었다. 올스타전 1차전에는 세 번째 투수로 등판했다. 이 해에는 55경기에 등판해 개인 최다인 43홀드와 1승 2패, 평균자책점 1.71의 좋은 성적을 올렸으며, 44홀드포인트로 2년 연속이자 세 번째로 최우수 중간계투 투수에 선정되었다. 오프시즌에는 전년과 같은 추정 연봉 2억 엔에 인센티브를 더한 조건으로 계약을 갱신했다. 2020년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영향으로 120경기제 단축 시즌이 되었고 개막도 6월 19일로 연기됐지만, 개막을 1군에서 맞아 아키요시 료, 다마이 히로토와 함께 승리 패턴을 맡았다. 다만 마무리 투수 아키요시는 8월 이후 불안정한 투구가 이어져 9월 3일 등록이 말소되었다. 전년 60경기에 등판했고 클로저 경험도 있던 이시카와 나오야가 토미 존 수술을 받고 장기 이탈한 팀 사정 때문에 미야니시는 클로저로 전환했고, 9월 14일 라쿠텐전에서 4년 만에 세이브를 올렸다. 전환 초기에는 실점이 눈에 띄었지만, 9월 22일 세이부전 이후 14경기 연속 무실점으로 시즌을 마쳤다. 이 해에는 50경기에 등판해 2승 1패 21홀드 8세이브, 평균자책점 2.05를 기록했다. 오프시즌에는 인센티브를 포함해 최대 총액 6억 엔의 2년 계약을 새로 맺고, 5000만 엔 인상된 추정 연봉 2억5000만 엔에 인센티브를 더한 조건으로 계약했다. 2021년에는 5년 연속 개막 1군에 들었으나, 개막 후 9경기 중 3경기에서 3실점하는 등 1승 2패 5홀드, 평균자책점 10.57로 부진해 4월 26일 출전 선수 등록이 말소되었다. 5월 14일 재등록되었고, 전반기 종료 시점에는 BABIP .391의 불운도 겹쳐 24경기 등판, 평균자책점 5.82의 성적이었다. 도쿄 올림픽으로 인한 중단 기간을 거쳐 후반기 개막도 1군에서 맞았으며, 후반기에는 BABIP .259로 운이 정상화되면서 26경기 등판, 평균자책점 1.59를 기록했다. 이 해에는 50경기에 등판해 1승 2패 15홀드, 평균자책점 3.65의 성적을 남겼다. 오프시즌에는 전년과 같은 추정 연봉 2억5000만 엔에 계약을 갱신했다. 2022년에는 3월 6일 오픈전에서 오프너로 프로 입단 후 첫 선발 등판을 경험했다. 정규시즌에서는 불펜으로 1군에서 개막을 맞았지만, 3·4월에는 10경기 등판, 평균자책점 6.75에 그쳤다. 5월에는 10경기 등판, 평균자책점 3.12로 회복세를 보였으나, 6월 1일 출전 선수 등록이 말소되었다. 신조 쓰요시 감독은 “슬라이더의 휘어짐이 조금 빠르다. 그가 해왔던 것처럼 타자 가까이에서 툭 꺾이는 변화구를 BOSS 그룹(2군)에서 한 번 더 해줬으면 한다”며 무기한 2군 재조정을 통보했다. 6월 7일 2군 경기에서는 왼팔에 타구를 맞아 긴급 강판했지만, 애널리스트와의 대화에서 슬라이더가 좋지 않은 원인을 깨닫고 부기가 남아 있는 상태에서도 자청해 같은 달 9일 2군 경기에 등판하는 등 적극적으로 조정을 이어갔다. 7월 29일에는 특례 2022의 대체 지명 선수로 출전 선수 등록이 되었지만, 8월 10일 다시 등록이 말소되었다. 최근 몇 년 사이 왼쪽 팔꿈치에 물이 차면서 컨디션 조절이 어려워졌고, 말소 후 수술을 결심했다. 구단에 “한 번 더 승부하고 싶다”며 수술 후 재도전을 원한다고 요청하자, “지금까지 잘해줬으니 네가 원하는 대로 하라”는 허락을 받았고, 9월 6일 왼쪽 팔꿈치 클리닝 수술을 받았다. 남은 시즌은 재활에 힘썼으며, 이 해에는 0승 3패 7홀드 1세이브, 평균자책점 5.66을 기록했다. 프로 입단 후 가장 적은 24경기 등판에 그쳤고, 자신이 보유하던 퍼시픽리그 기록인 ‘연속 시즌 50경기 이상 등판’과 ‘신인부터 연속 시즌 50경기 이상 등판’은 모두 14년 연속에서 끊겼다. 오프시즌 계약 갱신 교섭에서는 감액 제한(40%)을 크게 넘는 2억 엔 삭감(80% 삭감)의 추정 연봉 5000만 엔에 성과급을 더한 조건으로 사인했다. 계약 갱신 후 인터뷰에서는 현역 은퇴를 생각하기도 했지만 “신구장에서 야구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사랑하는 아들의 한마디에 각오를 새롭게 했다고 밝혔다. 2023년에는 2월 18일 연습 경기에서 수술 후 실전에 복귀했고, 7년 연속 개막 1군에 들었다. 4월 7일 오릭스전에서 시즌 첫 실점을 한 뒤 무실점 투구를 이어갔고, 5월 20일 오릭스전에서는 이가라시 료타가 보유하고 있던 ‘프로 첫 등판부터 연속 구원 등판’ NPB 기록(823경기)을 경신했다. 이 경기를 포함해 18경기 연속 무실점 기록을 세우는 등 교류전 종료 시점에는 24경기 등판, 평균자책점 1.40을 기록했다. 다만 본인이 “얼마나 버틸까 하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내 생각대로랄까, 7월 무렵까지 정말 잘 1군에 있었구나 싶다”고 말했듯, 춘계 캠프 때부터 전력을 다한 영향도 있어 점차 페이스가 떨어졌고, 7월 23일 출전 선수 등록이 말소되었다. 9월 28일 재등록되었으나 등판 기회는 없었고, 다음 날인 29일 다시 등록이 말소되었다. 이 해에는 31경기에 등판해 1승 3패 13홀드 1세이브, 평균자책점 2.66의 성적을 남겼으며, 오프시즌에는 현상 유지인 추정 연봉 5000만 엔에 성과급을 더한 조건으로 계약을 갱신했다. 2024년에는 8년 만에 개막을 2군에서 맞았고, 이스턴리그에서는 12경기에 등판해 평균자책점 1.59를 기록한 뒤 6월 18일 출전 선수로 등록되었다. 전반기 종료 시점에는 9경기 등판, 0승 0패 3홀드, 평균자책점 1.42의 성적이었다. 이후 6월 26일 세이부전부터 17경기 연속 무실점의 호투를 이어갔고, 후반기에는 홀드 기회도 늘었다. 등록 말소 없이 정규시즌을 마쳤으며, 이 해에는 30경기에 등판해 0승 1패 19홀드, 평균자책점 2.10을 기록했다. 롯데와의 CS 퍼스트 스테이지 3차전에서 CS 첫 세이브를 기록하는 등 포스트시즌에서는 모두 3경기에 등판했다. 오프시즌에는 1500만 엔 인상된 추정 연봉 6500만 엔에 계약을 갱신했다. 2025년에는 2년 만에 개막 1군에 들었다. 4월 종료 시점에는 7경기 등판, 0승 0패 2홀드, 평균자책점 3.00의 성적이었으나, 5월 4일 세이부전에서는 2점 앞선 7회초 2사 2루에서 대타 히라누마 쇼타를 상대하는 장면에 구원 등판해 중견수 뜬공으로 잡고 홀드를 기록했다. 이후에는 불을 끄는 역할로 기용되는 일이 늘었다. 5월 15일 오릭스전에서는 0-0의 7회초 2사 3루에서 니시카와 료마를 상대하는 장면에 등판해 2루수 땅볼로 처리했고, 이와세 히토키가 보유하고 있던 연속 구원 등판 NPB 기록(879경기)을 경신했다. 교류전에서도 홀드를 쌓아갔으나, 본인이 “원포인트나 주자를 둔 장면에서의 등판이 늘면서 ‘맞고 싶지 않다’는 힘이 들어가 균형이 흐트러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듯 리그전 재개 이후에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등판이 눈에 띄었고, 8월 1일 출전 선수 등록이 말소되었다. 본인은 “던지기 위한 준비는 늘 하고 있지만, 트레이닝은 ‘내일도 던질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승부처에서 제대로 몸을 몰아붙일 수가 없다”고 자기분석했고, 2군에서는 몸을 철저히 단련한 뒤 9월 4일 재등록되었다.
代表経歴 > 第4回WBC
2016년 10월 18일 사무라이 재팬 강화 경기 출전 선수로 선출되어 2경기에 등판했다. 같은 해 12월 20일 앞당겨 발표된 제4회 WBC 일본 대표 일부 명단(18명)에 포함되었고, 2017년 1월 28일 발표된 전체 명단 28명에도 이름을 올렸다. 이 대회에서는 4경기에 등판해 평균자책점 0.00을 기록했다.
選手としての特徴
스리쿼터 투구 폼에서 던지는 예리한 직구와 슬라이더로 타자를 잡아내는 좌완 투수이다. 싱커도 구사하지만, 2019년 시즌의 투구 비율은 직구 52.5%, 슬라이더 46.6%로 사실상 두 구종에 집중되어 있었다. 직구 최고 구속은 아마추어 시절 147km/h, 프로 입단 후에는 148km/h를 기록했다. 왼쪽 팔꿈치 바깥쪽에 유리연골이 생기기 쉬운 체질이다. 또한 2019년 시즌 무렵부터 “던질 때마다 왼팔꿈치에 물이 차서 주사로 빼야 했다”고 말할 만큼 왼팔꿈치에 물이 차는 증상으로 컨디션 조절이 어려워졌고, 프로 입단 후 왼팔꿈치 수술을 세 차례 받았다. 2018년 시즌 종료 후 받은 두 번째 수술에서는 왼팔꿈치 안쪽 측부 인대가 수술이 필요할 정도로 늘어나 있었음에도, 평소처럼 공을 던질 수 있을 만큼 인대의 신축성이 유지되어 있다는 사실이 사전 진찰에서 확인되었다. 이처럼 인대의 유연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투구할 때 왼팔꿈치가 바깥쪽으로 기울어지는 경향이 나타난다. 투구 폼의 경우, 대학 3·4학년 때 구종을 늘리고 구속을 높이기 위해 오버스로로 던졌지만, “팔 위치가 점점 위로 올라가면서 컨디션이 무너지고 있었다”고 말할 만큼 몸에 맞지 않았다. 프로 1년 차 춘계 캠프에서 대학 2학년 시절의 미야니시 나오키를 지켜봤던 야마다 마사오 GM의 “폼을 원래대로 되돌려 달라”는 한마디를 계기로 투구 폼을 수정했고, 스리쿼터 좌완으로서 커리어를 시작했다. 본인이 “여기서만 던질 수 있다는 포인트를 만들지 않는다. 옆 각도를 주고 싶을 때는 손을 내려 사이드로 던지고, 힘을 넣어 던지고 싶을 때는 위로 올리는 등 상대 타자의 타이밍을 빼앗기 위해 팔 각도를 바꾼다”고 말했듯, 폼을 고정하지 않는 방식으로 활약을 이어갔다. 그러나 2019~2020년 폼이 매우 좋았던 탓에 “이 폼이 완성형이다. 그렇다면 이대로 계속하면 된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같은 폼만 추구한 결과 2021년 시즌 전반에는 고전했다. 또 왼팔꿈치에 통증이 있을 때도 투구법을 바꿔 왔지만, 2022년 시즌 초에는 왼팔꿈치를 감싸며 던지다 자신의 투구를 잃었다고 한다. 2023년부터 체인지업을 던지기 시작했으며, 이듬해인 2024년 춘계 캠프에서는 투수 코치 가네코 지히로의 조언을 받아 이를 개량했다.
人物
애칭은 ‘미야’, ‘먀사마’ 등이다. 닛폰햄 입단 후인 2011년 11월 삿포로시에 거주하는 여성과 결혼했다. 2012년 7월 장남이, 2015년 7월 차남이, 2024년 4월 삼남이 태어났다. 2015년 5월 인터뷰에서는 당시 2세였던 장남이 야구를 시작했다고 밝히며 “장남과 집에서 캐치볼을 할 때 빠른 공을 던진다”고 말해 자상한 아버지의 면모를 보였다. 한편 특별히 야구를 시킬 생각은 없으며, 장래에는 안정적으로 샐러리맨이 되었으면 한다고도 말했다. 또한 2025년 8월 22일 유튜브 채널 ‘토쿠상TV【A&R】’에서 장남이 소개되었다. 효고현 출신이지만 닛폰햄과 연고지 홋카이도에 대한 애정이 강하다. 입단 후 2014년부터 국내 FA권과 해외 FA권을 잇따라 취득했지만, 한 번도 행사하지 않고 팀에 잔류했다. 국내 FA권을 처음 취득한 뒤 기자회견에서 권리를 행사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히며, “‘새로운 환경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 하고 고민할 정도로 내 야구 인생의 ‘원점’을 다시 생각해 봤다. 그랬더니 대학 2학년 때 주위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음에도 3·4학년 때 실전에서 결과를 남기지 못한 나를 지명해 준 파이터즈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원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간사이에서 자랐고 간사이를 좋아하지만, 어느새 홋카이도에 돌아올 때마다 ‘아, 돌아왔구나’라고 느낄 정도로 홋카이도는 이제 ‘제2의 고향’이 되어 있다. 그래서 ‘홋카이도를 대표하는 이 팀에서 계속 활약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케다 마사루와는 2005년 IBAF 월드컵에서 일본 대표팀 동료였다. 낯선 해외 생활 속에서 당시 대학생은 미야니시 나오키 한 명뿐이었고 스트레스가 많았는데, 그때 다정하게 대해 준 사람이 다케다였다. 이후 닛폰햄에서도 팀 동료가 되었고, 2016년 다케다가 은퇴할 때에는 “나를 위해 우승해라”라는 말에 화답해 “11년간 수고 많으셨습니다. 모두가 마사루 씨를 위해 우승했습니다!”라는 문구의 현수막을 직접 앞장서 제작할 정도로 마음을 쏟았다. 이 문구는 티셔츠로도 제작되어 11월 18일부터 판매되었다. 다케다는 2020년부터 2022년까지 닛폰햄 1군 투수 코치로서 미야니시 나오키를 지도했다. 2024년 7월에는 홋카이도 삿포로시 주오구에 트레이닝과 필라테스를 할 수 있는 ‘UOMS(우옴즈)’를 개업했다.
詳細情報 > タイトル
최우수 중간계투 투수: 3회(2016년, 2018년, 2019년)
詳細情報 > 表彰
골든스피릿상: 1회(2023년)
詳細情報 > 記録
첫 기록 투수 기록 첫 등판: 2008년 3월 25일, 대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1차전(삿포로돔), 8회초에 두 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 1이닝 무실점 첫 탈삼진: 위와 같음, 8회초 사토 도모아키를 상대로 헛스윙 삼진 첫 홀드: 2008년 4월 4일, 대 오릭스 버팔로즈 1차전(교세라돔 오사카), 7회말 2사에 세 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 ⅓이닝 무실점 첫 승리: 2008년 5월 11일, 대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8차전(하코다테시 치요다이 공원 야구장), 7회초에 두 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 1이닝 무실점 첫 세이브: 2010년 5월 19일, 대 요미우리 자이언츠 2차전(삿포로돔), 9회초에 네 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해 경기를 마무리, 1이닝 무실점 타격 기록 첫 타석: 2010년 6월 4일, 대 요미우리 자이언츠 3차전(도쿄돔), 8회초 야마구치 데쓰야를 상대로 헛스윙 삼진 이정표 기록 100홀드포인트: 2012년 8월 17일, 대 지바 롯데 마린즈 15차전(삿포로돔), 7회초에 두 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 1이닝 무실점 ※역대 17번째, 5년 차 달성은 퍼시픽리그 최단 기록 100홀드: 2013년 5월 18일, 대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 2차전(요코하마 스타디움), 7회말에 두 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 ⅔이닝 무실점 ※역대 12번째 200홀드: 2016년 5월 14일, 대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10차전(삿포로돔), 7회초에 세 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 1이닝 무실점 ※야마구치 데쓰야에 이어 역대 2번째, 퍼시픽리그 최초 500경기 등판: 2016년 7월 27일, 대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16차전(세이부 프린스돔), 8회초에 세 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 1이닝 무실점 ※역대 96번째 250홀드: 2017년 8월 3일, 대 지바 롯데 마린즈 16차전(ZOZO 마린 스타디움), 6회말에 두 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 1이닝 무실점 ※야마구치 데쓰야에 이어 역대 2번째, 퍼시픽리그 최초 600경기 등판: 2018년 6월 30일, 대 오릭스 버팔로즈 10차전(삿포로돔), 7회초 1사에 두 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 ⅔이닝 무실점 ※역대 40번째, 600경기 연속 구원 등판은 역대 4번째, 한 구단 소속이자 첫 등판부터 연속 구원 등판으로 달성한 것은 역대 최초 300홀드: 2019년 4월 13일, 대 지바 롯데 마린즈 2차전(삿포로돔), 7회초에 세 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 1이닝 무실점 ※프로야구 사상 최초 700경기 등판: 2020년 7월 29일, 대 오릭스 버팔로즈 8차전(삿포로돔), 8회초에 네 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 1이닝 무실점 ※역대 17번째 350홀드: 2020년 8월 12일, 대 지바 롯데 마린즈 8차전(ZOZO 마린 스타디움), 8회말에 여섯 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 1이닝 무실점 ※역대 최초 400홀드포인트: 2021년 5월 18일, 대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10차전(라쿠텐생명파크 미야기), 7회말에 다섯 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 1이닝 무실점 ※역대 최초 800경기 등판: 2022년 5월 21일, 대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10차전(삿포로돔), 9회초에 세 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해 경기를 마무리, 1이닝 무실점 ※역대 8번째 400홀드: 2024년 8월 4일, 대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16차전(미즈호 PayPay 돔 후쿠오카), 8회말에 두 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 ⅔이닝 무실점 ※역대 최초 900경기 등판: 2025년 9월 23일, 대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25차전(에스콘필드), 5회초 1사에 세 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 ⅓이닝 무실점 ※역대 4번째 기타 기록 14년 연속 50경기 이상 등판: 2008년~2021년 ※프로야구 역대 2위, 퍼시픽리그 기록, 구단 기록 900경기 연속 구원 등판(2025년 시즌 종료 시점) ※NPB 최장 기록 통산 424홀드(2025년 시즌 종료 시점) ※NPB 최다 기록 통산 462홀드포인트(2025년 시즌 종료 시점) ※NPB 최다 기록 올스타전 출장: 3회(2015년, 2018년, 2019년)
詳細情報 > 背番号
25(2008년~)
詳細情報 > 代表歴
2017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일본 대표
출처: 일본어 위키백과 (CC BY-SA 4.0 · 번역 2026-0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