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 목록

지바 롯데 마린스

카라카와 유키

唐川 侑己

카라카와 유키(唐川 侑己, 1989년 7월 5일~)는 지바현 나리타시 출신의 프로 야구 선수(투수)이다. 우투우타이며, 지바 롯데 마린스 소속이다.

経歴 > プロ入り前

아버지의 방침에 따라 초등학교 입학 무렵에는 가라테를 시작해 초록띠를 땄고, 나리타 시립 나리타 초등학교 3학년 때 나리타쇼 폭스에 들어가 야구를 시작했다. 이후 줄곧 투수를 맡았다. 초등학교 6학년 때는 지바현 대회 베스트 8에 올랐다. 나리타 초등학교 두 학년 위에는 여자 마라톤 선수 다나카 도모미가 있었다. 중학교 때는 강호 시니어리그 팀의 적극적인 권유를 받았지만 들어가지 않고, 나리타 시립 니시 중학교 연식 야구부에 입부했다. 이 역시 몸이 완성되기 전에 경식구로 야구를 하는 데 반대한 아버지의 방침 때문이었다. 중학교 3학년 때는 K볼 나리타시 선발의 에이스로 전국대회 준우승을 이끌었다. 고등학교는 나리타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초등학생 때부터 나리타 고등학교 경기를 보러 다녔고, 자연스럽게 이 학교에 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입학 후 불펜 투구를 본 오지마 하루노부 감독은 1학년임에도 뛰어난 제구력에 놀라, 급히 4월 둘째 주 연습경기에 등판시켰다. 카라카와는 2이닝 6탈삼진으로 곧바로 비범한 재능을 보였다. 1학년 여름부터 벤치에 들어갔고(등번호 18), 같은 해 가을 간토대회부터 등번호 1을 달았다. 가을 지바현 대회 결승에서는 이와사키 쇼가 있던 시립 후나바시 고등학교를 꺾었다. 이어진 간토대회에서는 나리타 고등학교의 첫 우승을 이끄는 원동력이 되었고, 카라카와는 1회전과 2회전에 선발 등판해 모두 완투승을 거두며 2승을 올렸다. 이로써 학교의 선발고등학교야구대회 첫 출전을 사실상 확정했고, 메이지진구 야구대회에도 출전했다. 2학년 때 출전한 제78회 선발고등학교야구대회에서는 1회전 고마쓰시마 고등학교전에서 10탈삼진 완봉승을 거두며 단숨에 이름을 알렸다. 2회전에서는 신코가쿠엔 고등학교에 0-2로 아깝게 패했다. 우승 후보로 꼽히던 여름 지바 대회에서는 2회전에 선발 등판했으나 시립 이나게 고등학교에 패해 첫 경기에서 탈락했다. 가을에는 현 대회 결승에서 마루 요시히로가 있던 지바 경제대학 부속 고등학교를 꺾고 간토대회에 출전했다. 3학년 때 제79회 선발고등학교야구대회에서는 첫 경기에서 연장 12회 끝에 그해 여름 준우승팀인 고료 고등학교에 패했다. 여름 지바 대회에서는 4회전에서 도카이대 우라야스 고등학교와 맞붙었다. 이 대회 28이닝째에 처음으로 실점했고, 연장 14회 끝에 0-1로 패했다. 당시 배터리를 이뤘던 포수 니시다 가즈야가 득점하지 못한 일을 사과하자, “내가 0점으로 막았으면 지지 않았지.”라고 답했다고 한다. 여름 고시엔 출전은 놓쳤지만, 현 대회에서 등판한 3경기에서 35탈삼진을 기록하며 기량을 충분히 보여 주었다. 고시엔 통산 성적은 1승 2패, 평균자책점 0.90이었다. 고교생 드래프트 후보로서 오사카 도인 고등학교의 나카타 쇼, 센다이 이쿠에이 고등학교의 사토 요시키와 함께 ‘고교 빅3’로 불렸다. 2007년 10월 3일 열린 프로 야구 드래프트 회의에서는 지바 롯데 마린스와 히로시마 도요 카프로부터 1순위 지명을 받았고, 추첨 결과 지역 연고 구단인 롯데가 교섭권을 획득했다. 같은 해 11월 6일 계약금 9000만 엔, 연봉 1000만 엔(금액은 모두 추정)에 가계약을 맺었다. 등번호는 19번이다.

経歴 > ロッテ時代

2008년 4월 23일, 고교 빅3 가운데 가장 먼저 1군에 등록되었다. 4월 26일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전(후쿠오카 Yahoo! JAPAN 돔)에서 프로 첫 등판이자 첫 선발 등판에 나서 7이닝 무실점을 기록했고, 드래프트제 도입 이후 롯데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고졸 신인이 프로 첫 등판·첫 선발 등판에서 첫 승리를 거두었다. 이 승리는 헤이세이 시대 출생 프로 야구 선수가 거둔 첫 승리이기도 했다. 5월 3일 프로 두 번째 등판인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전(지바 마린 스타디움)에서는 고졸 신인으로서 드래프트제 시행 이후 최초의 무볼넷 완투승(1실점)을 달성했다. 5월 13일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전(도쿄 돔)에서도 8이닝 2실점으로 데뷔 후 3연승을 기록했다. 그러나 교류전에서는 4경기 0승 1패, 평균자책점 8.05로 난타당했고, 이후에도 부진해 규정투구이닝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그래도 고졸 신인으로서 5승 4패, 평균자책점 4.85의 성적을 남겼다. 2009년에는 개막부터 선발 로테이션에 들어갔다. 5월 10일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전(지바 마린)에서 보비 밸런타인 감독의 기대에 부응하며 프로 첫 완봉승을 거두었고, 5월 19일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전(지바 마린)에서는 9이닝 1실점으로 2경기 연속 완투하며 4승째를 올렸다. 그러나 이후에는 타선의 지원을 받지 못해 21경기에 선발 등판해 5승 8패, 평균자책점 3.64를 기록했다. 9일 휴식 후 나선 시즌 최종전 라쿠텐전(크리넥스 스타디움 미야기)에서는 6과 1/3이닝 5실점으로 강판되며, 규정투구이닝까지 2/3이닝이 모자랐다. 2010년에도 개막부터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해 3월 22일 세이부전(세이부 돔)에서 9이닝 2실점 완투로 시즌 첫 승리를 거뒀다. 그러나 5월 13일 요코하마전(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다케야마 신고의 타구에 오른손을 맞아 중지가 골절되었고, 5월 15일 출전 선수 등록이 말소되었다. 8월 12일 닛폰햄전에서 복귀해 6이닝 2실점으로 승리한 뒤, 8월 19일 닛폰햄전(도쿄 돔)에서는 프로 통산 두 번째 완봉승을 거두었다. 다음 경기에서도 승리해 복귀 후 3연승을 기록했지만, 9월 1일 오른쪽 팔꿈치 통증으로 출전 선수 등록이 말소되며 정규시즌을 마쳤다. 최종 성적은 6승 3패, 평균자책점 2.71이었으나 규정투구이닝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일본시리즈 4차전에서 69일 만에 등판해 헤이세이 시대 출생 선수로는 처음으로 일본시리즈 마운드에 올랐지만, 3과 1/3이닝 2실점으로 강판되었다. 11월 13일 도쿄 돔에서 열린 SK 와이번스와의 한일 클럽 챔피언십에 선발 등판해 5이닝 2피안타 무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되었다. 2011년에는 3년 연속 개막 선발 로테이션 진입에 성공했고, 4월 20일 세이부전(QVC 마린필드)에서 프로 통산 세 번째 완봉승으로 시즌 첫 승리를 올렸다. 전날 나루세 요시히사도 완봉승을 거둔 데 이어 나온 기록으로, 구단에서는 1996년 야부타 야스히코와 에릭 힐먼이 긴테쓰 버팔로스전에서 달성한 이후 15년 만의 2경기 연속 완투 완봉승이었다. 5월 14일 라쿠텐전(QVC 마린), 6월 28일 닛폰햄전(삿포로 돔)에서도 완봉승을 거두는 등 전반기에만 8승을 올리며 처음으로 올스타 게임에 출전했다. 후반기에도 승수를 쌓아 최종적으로 24경기에 선발 등판했고, 리그 공동 7위인 12승(6패), 6위인 평균자책점 2.41, 공동 3위인 3완봉을 기록했다. 이 시즌 처음으로 두 자릿수 승리와 규정투구이닝을 달성했다. 2012년에는 4년 연속 개막 선발 로테이션에 들었다. 4월 14일 소프트뱅크전(야후 돔)에서는 같은 세대의 이와사키 쇼와 맞대결해 7과 2/3이닝까지 퍼펙트 피칭을 펼치는 등 9이닝 4피안타 1실점으로 2승째를 올렸다. 6월에는 오른쪽 어깨 통증으로 출전 선수 등록이 말소되었으나, 전반기 12경기에 등판해 8승 2패, 평균자책점 2.66으로 안정적인 성적을 남기며 2년 연속 올스타 게임에 선출되었다. 그러나 7월 14일 오른쪽 팔꿈치 통증으로 다시 등록이 말소되었고, 이후 오른쪽 팔꿈치 내측 인대염 진단을 받아 올스타 게임 출전을 사퇴했다. 이후 1군에 복귀하지 못한 채 시즌을 마쳤다. 2013년에는 5년 연속 개막 선발 로테이션에 들었고, 시즌 내내 부상으로 이탈하지 않고 로테이션을 지키며 개인 최다인 27경기에 선발 등판했다. 두 자릿수 승리는 올리지 못했지만 팀 최다 타이인 9승(11패), 평균자책점 4.18을 기록했고, 팀에서 유일하게 규정투구이닝을 채웠다. 10월 14일에는 클라이맥스 시리즈 퍼스트 스테이지 3차전에 선발 등판해 5이닝 0/3을 1실점으로 막았다. 클라이맥스 시리즈 첫 등판이자 첫 선발 등판에서 첫 승리를 거두며 파이널 스테이지 진출에 기여했다. 파이널 스테이지에서는 4차전에 선발 등판했으나 1과 1/3이닝 3실점으로 강판되었고, 팀도 탈락했다. 2014년에는 6년 연속 개막 선발 로테이션에 들었지만, 부진 속에 개막 후 5연패를 당했다. 2와 1/3이닝 7실점으로 강판된 다음 날인 4월 13일에는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중간계투 등판도 경험했다. 2군 강등도 겪었고, 7월 1일 소프트뱅크전(도쿄 돔)에서 시즌 첫 승리를 올렸지만 이후 6경기 동안 승리를 추가하지 못했다. 그러나 8월 20일 오릭스전(QVC 마린)에서는 두 번째 투수로 등판해 2이닝 5탈삼진 무실점으로 프로 첫 홀드를 기록했고, 사흘 휴식 후 등판한 소프트뱅크전에서는 7이닝 무실점으로 2승째를 올렸다. 이후 4경기에 선발 등판하고 2경기에 구원 등판해 2승 1패를 기록했다. 9월 26일 닛폰햄전에서는 2년 만에 완투승을 거두었다. 최종 성적은 4승 9패 1홀드, 평균자책점 4.66이었다. 2015년에는 7년 연속 개막 선발 로테이션에 포함되었지만, 첫 선발 등판이었던 닛폰햄전(QVC 마린)에서 3과 1/3이닝 8실점으로 부진했고 다음 날 2군으로 내려갔다. 재승격 후에는 팀 타선의 지원에 힘입어 3연승을 거두었으나 상승세를 이어 가지 못했다. 8월 15일 오릭스전(교세라 돔)에서 2이닝 4실점으로 강판된 뒤에는 등판 기회를 잃었다. 시즌 성적은 12경기 등판, 5승 4패, 개인 최악의 평균자책점 6.32였다. 2016년에는 스프링캠프부터 2군에서 시작했고, 신인 시즌을 제외하면 처음으로 개막 선발 로테이션 진입에 실패했다. 5월 6일 1군에 승격된 뒤 후반기에 선발 로테이션에 정착했고, 8월 11일 라쿠텐전(QVC 마린)에서 5년 만의 완봉승을 거두었다. 최종적으로 15경기에 선발 등판해 6승 6패, 평균자책점 2.84를 기록했다. 2017년에는 개막부터 선발 로테이션에 들었지만, 개막 후 7경기에서 1승 6패, 평균자책점 4.89로 불안정한 투구를 이어 갔다. 그래도 이후 시즌 내내 선발 로테이션을 지켰다. 최종 성적은 21경기 선발 등판, 5승 10패, 평균자책점 4.49였다. 특히 오릭스전에서는 6경기에서 3승 0패, 평균자책점 1.89로 강한 면모를 보였다. 2018년에는 4월 중순부터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했지만, 3경기 모두 자책점 4점을 기록하며 3연패한 뒤 2군으로 내려갔다. 7월 5일 오릭스전(교세라 돔)에 선발 등판해 시즌 첫 승리를 올렸으나, 이 경기가 시즌 마지막 선발 등판이 되었고 시즌 후반부터 중간계투로 전향했다. 8월 7일 소프트뱅크전(ZOZO 마린 스타디움)에서 4년 만에 구원 등판해 시즌 첫 홀드를 올린 뒤, 이후 21경기에서 1실점, 평균자책점 0.36을 기록하며 중간계투로 새 가능성을 보였다. 최근 몇 년간의 침체에서 벗어나는 계기도 마련했다. 시즌 성적은 1승 3패 4홀드, 평균자책점 2.83이었다. 2019년에는 중간계투로 개막 1군에 들었다. 승리 경기의 8회를 맡아 개막 후 7경기 연속 무실점을 기록했다. 전반기 마지막 경기였던 7월 10일 닛폰햄전(ZOZO 마린)에서는 마이크 볼싱어가 오른발 염좌로 등판을 피하면서 불펜 데이의 첫 번째 투수로 1년 만에 선발 등판했다.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고 교체되었다. 그러나 시즌 후반에는 부진했다. 특히 8월에는 6경기에서 평균자책점 17.39로 난타당하는 등 기복이 컸다. 최종 성적은 5승 3패 14홀드, 평균자책점 5.26이었다. 2020년에는 당초 선발로 시즌을 준비했다. 그러나 개막부터 8회를 맡았던 제이 잭슨이 7월 8일 퇴단하면서 7회를 던지던 프랑크 허먼이 8회로 보직을 옮겼다. 7회를 맡는 투수가 유동적으로 바뀌었고, 7월 말 기준 구원진 평균자책점도 4.39로 부진해지자 7월 29일 구원 요원으로 시즌 첫 1군 승격을 했다. 8월 9일 오릭스전(교세라 돔)에서 시즌 첫 홀드를 올린 뒤에는 승리 경기의 7회에 고정되었다. 9월 23일 라쿠텐전(라쿠텐모바일파크 미야기)에서 아사무라 히데토에게 2점 홈런을 맞고 패전투수가 되기 전까지 17경기 연속 무실점, 평균자책점 0.00의 완벽한 투구를 이어 갔다. 이후에도 허먼, 마스다, 시즌 도중 합류한 사와무라 다쿠이치 등과 함께 불펜을 이끌었고, 팀의 구원진 평균자책점은 리그 2위인 3.30을 기록했다. 최종적으로 32경기에 등판해 1승 1패 14홀드, 평균자책점 1.19를 기록하며 팀의 13년 만의 2위, 4년 만의 A클래스 진입과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에 기여했다.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는 1차전과 2차전에 모두 등판해 무실점으로 막았지만 팀은 패했다. 시즌 종료 후 2018년에 취득한 해외 FA권을 행사해 국내 이적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으나, 12월 4일 잔류가 발표되었다. 같은 달 21일에는 1800만 엔 인상된 연봉 8000만 엔에 복수년 계약을 맺었다(금액은 추정). 2021년에는 6월 17일 목 디스크로 등록이 말소되어 9월 하순까지 이탈했지만, 38경기에 등판해 4승 2패, 평균자책점 2.72를 기록했다. 2022년에는 전년도 오른쪽 무릎 부상의 여파로 복귀가 늦어져 8월 3일 1군에 합류했다. 8월 24일 세이부전(ZOZO 마린)에서 7회에 구원 등판했고, 이닝 종료 후 팀이 역전에 성공하면서 승리투수가 되었다. 이 승리로 구단 최초로 프로 1년 차부터 15년 연속 승리를 기록했다. 9월 10일 라쿠텐전(라쿠텐모바일파크)까지 14경기에 등판해 평균자책점 0.71의 호투를 이어 갔지만, 9월 11일 같은 라쿠텐전부터 난타를 당하며 평균자책점이 5.28까지 올라 등록이 말소되었다. 12월 12일 연봉 조정에서 1억 엔으로 재계약하며 프로 15년 차에 억대 연봉에 도달했다. 2023년에는 중간계투로 5경기에 등판했으나 평균자책점 7.71로 결과를 내지 못했고, 이후 2군에서 조정이 이어졌다. 8월부터는 2군에서 선발 전환을 준비했고, 10월 3일 세이부전(ZOZO 마린 스타디움)에서 4년 만에 1군 선발 등판에 나섰지만 3이닝 5피안타 2실점으로 패전투수가 되었다. 최종적으로 6경기에 등판해 0승 1패 1홀드, 평균자책점 7.04에 그치며 프로 입단 후 처음으로 승리를 올리지 못한 시즌이 되었다. 시즌 후에는 3850만 엔 삭감된 연봉 7150만 엔에 새로 단년 계약을 맺었다. 2024년에는 다시 선발로 전향했다. 4월 16일 세이부전(ZOZO 마린 스타디움)에서는 승리를 얻지는 못했지만 5회까지 퍼펙트 피칭을 펼치는 등 6이닝 1피안타 무실점의 호투를 보였다. 7월 27일 라쿠텐전(라쿠텐모바일파크)에서는 6이닝 1실점으로 막고 2018년 이후 2214일 만에 선발승을 거두었다. 2025년에는 5월 6일 라쿠텐전(ZOZO 마린 스타디움)에 선발 등판할 예정이었으나 우천 취소로 등판 기회를 얻지 못했고, 등록도 말소되었다. 6월 11일 히로시마전(ZOZO 마린 스타디움)에서는 연장 11회부터 등판했으나, 이닝을 넘겨 던진 12회에 4실점하며 패전투수가 되었다. 이 경기에서 오른쪽 무릎을 다쳐 복귀까지 시간이 걸렸다. 9월 23일 세이부전에서는 선발 등판해 7이닝 3피안타 무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되었다. 12월 12일 연봉 협상에서 1400만 엔 삭감된 연봉 4400만 엔에 사인했다.

選手としての特徴

프로 입단 전까지는 퀵 모션을 하지 못했다. 나리타 고등학교의 오지마 감독은 퀵 모션을 가르치면 투구 폼의 균형이 무너질까 우려했다고 말했으며, 카라카와는 프로 입단 후에 퀵 모션을 익혔다. 상대 타자들에게서는 직구와 슬라이더를 던질 때 팔 스윙이 완전히 같아 타이밍을 잡기 어렵고, 직구의 구속 표시와 체감 속도가 다르다는 평가를 받았다. 직구는 빠르지만 강속구 투수라고 할 정도는 아니고, 변화구도 다양하지만 시야에서 사라질 정도는 아니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칠 수 없는 투수’로 불렸다. 2013년 무렵부터 직구 구속이 떨어지고 성적도 나빠지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에(개인 성적 참조), 뒤에서 설명하듯 두 차례에 걸쳐 투구 스타일을 크게 바꾸었다.

選手としての特徴 > 2015年以前

평균 구속 약 139km/h(2011년)의 직구와 슬라이더를 축으로, 평균 구속 101km/h의 커브와 체인지업을 균형 있게 섞고 드물게 슈트도 던지는 투구 스타일이었다. 그러나 2015년 무렵에는 평균 구속이 136km/h까지 떨어졌다.

選手としての特徴 > 2016年~2018年

평균 구속을 고교 시절 최고 구속인 148km/h에 가까운 140km/h대 중반까지 회복한 직구와 슬라이더, 커브를 축으로 삼고, 드물게 체인지업과 슈트, 포크를 던지는 투구 스타일이었다.

選手としての特徴 > 2019年以降

중간계투로 본격 전향한 2019년 이후에는 주자가 없을 때도 세트 포지션에서 던지는 폼으로 바꾸었다. 140km/h대 중반의 직구와 직구와 거의 같은 궤도·구속의 커트볼을 중심으로, 비슷한 구속의 스플리터와 큰 커브를 섞는 투구 스타일로 변화했다. 또한 2020년에는 스플리터의 변화 폭을 키우고, 이전에도 사용했던 바깥쪽으로 달아나는 체인지업을 던지는 등 매년 조금씩 변화를 주고 있다.

人物

좌우명은 ‘태연자약’이다. 아버지가 좋아하는 말이기도 하다고 한다. 카라카와라는 성과 조합했을 때 ‘노력하면 크게 이룬다’는 획수가 된다고 하여, 카라카와 집안 자녀들의 이름은 8획+3획으로 지었다고 한다. 반려견 라라(拉々)도 마찬가지로 8획+3획이다. 어머니에 따르면 카라카와는 ‘조심스럽고 포근한 아이’였으며, 프로 야구 선수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또 중학교 3학년 때 진로 희망란에 ‘공무원’이라고 적었는데, 부모가 안정된 직업을 갖기를 바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롯데 신인 기숙사에 입소할 때 물개 모양의 바디필로 ‘시로탄’을 가져와 화제가 되었다. 이후 롯데 유니폼을 입은 콜라보 상품인 ‘마린스 시로탄’ 바디필로와 마스코트가 제작되었고, 2009년 신춘 첫 판매 행사에서 발매되자 5분 만에 완판되었다. 손톱이 쉽게 갈라지는 체질이라 네일리스트 경험이 있는 누나에게 정기적으로 관리를 받고 있다. 2016년 7월 고등학교 시절 동급생과 결혼했다고 공표했다.

詳細情報 > 記録

첫 기록 첫 등판·첫 선발 등판·첫 승리·첫 선발 승리: 2008년 4월 26일,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8차전(후쿠오카 Yahoo! JAPAN 돔), 7이닝 무실점 첫 탈삼진: 위와 같음, 1회말 가와사키 무네노리에게 헛스윙 삼진 첫 완투 승리: 2008년 5월 3일,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 7차전(지바 마린 스타디움), 9이닝 1실점 첫 완봉 승리: 2009년 5월 10일,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8차전(지바 마린 스타디움) ※ 이상의 기록은 모두 헤이세이 시대 출생 선수로서의 첫 기록이기도 하다. 첫 홀드: 2014년 8월 20일, 오릭스 버펄로스 16차전(QVC 마린필드), 6회초 두 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 2이닝 무실점 이정표 기록 1000투구 이닝: 2017년 4월 16일,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 3차전(ZOZO 마린 스타디움), 1회초 세 번째 아웃카운트로 소토자키 슈타를 3루수 땅볼 처리 ※역대 346번째, 헤이세이 시대 출생 선수 최초 기타 기록 올스타 게임 출장: 1회(2011년) ※2012년에도 선출되었으나 출전을 사퇴했다.

詳細情報 > 背番号

19(2008년~)

출처: 일본어 위키백과 (CC BY-SA 4.0 · 번역 2026-0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