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시노 유지(1991년 3월 6일~)는 도야마현 다카오카시 출신의 프로 야구 선수(투수)이다. 우투우타이며, 지바 롯데 마린스 소속이다.
経歴 > プロ入り前
형의 영향으로 5세 때부터 야구를 시작했다. 다카오카 시립 가와하라 소학교에서는 소년 야구팀 ‘가와하라 타이거스’에서 뛰었고, 다카오카 시립 다카오카 서부 중학교 시절에는 경식 야구 클럽 ‘다카오카 보이즈’에 소속됐다. 중학교 때까지는 외야수와 3루수를 겸했다. 다카오카 보이즈에서는 당시 2년간 코치를 맡았던 하시모토 기요시에게도 지도를 받았다. 중학교 시절에는 학업 성적도 좋아 진학교인 도야마 현립 다카오카 고등학교 진학을 권유받았지만, 야구 강호였던 이웃 마을의 도야마 현립 신미나토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학교까지는 자전거로 1시간이 걸렸다. 1학년 여름 투수로 전향했고, 3학년 봄 현 대회에서 8강에 오르며 야구 전문지에 도야마현의 주목 선수로 소개될 정도가 됐다. 에이스로 나선 3학년 여름 현 대회에서는 5경기에 모두 등판해 결승에 올랐으나, 다카오카 상업 고등학교와의 결승전에서 2-3으로 아깝게 패해 준우승에 그쳤다. 도요 대학 진학 제의가 있었고 당시 감독도 진학을 권했지만, 본인은 프로를 목표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진학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프로 지망 신고서를 제출했다. 2008년 10월 30일 프로야구 드래프트 회의에서 지바 롯데 마린스의 육성선수 드래프트 5순위 지명을 받았고, 11월 22일에 계약금 성격의 지급금 100만 엔, 연봉 240만 엔(금액은 추정)에 육성선수 계약을 맺었다. 등번호는 131번이었다.
経歴 > ロッテ時代
2009년에는 이스턴 리그에서도 등판이 없었다. 2010년에는 이스턴 리그 9경기에 등판해 35이닝을 던지며 평균자책점 2.83을 기록했다. 2011년에는 이스턴 리그 20경기에 등판해 35⅓이닝을 던지고 평균자책점 2.80을 기록했다. 육성선수 계약은 원칙적으로 3년이기 때문에 시즌 종료 후 자유계약 선수가 됐고, 이후 육성계약을 다시 맺었다. 2012년에는 이스턴 리그 11경기에 등판해 32이닝을 던졌으나 평균자책점 3.94로 성적이 떨어졌다. 시즌 종료 후 자유계약 선수가 됐지만, 마운드에서의 배짱을 높게 평가받아 11월 10일 지배하 선수로 등록됐다. 추정 연봉은 440만 엔이었고, 등번호는 67번으로 바뀌었다. 2013년에는 춘계 캠프를 2군에서 시작했다. 2월 말 1군에 합류한 뒤 오픈전에서 호투를 이어가며 개막 로테이션 진입 가능성도 거론됐지만, 중간계투로 1군 개막 엔트리에 들었다. 3월 30일 오릭스 버팔로즈전에서 프로 첫 등판을 했고, 2⅔이닝 6피안타 1실점을 기록했다. 4월 7일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전에서는 프로 첫 선발 등판에 나서 2이닝 1피안타 무실점으로 호투하고 있었지만, 경기가 우천 노게임이 되면서 기록으로 남지 않았다. 다음 날인 8일 같은 카드에 슬라이드 등판해 프로 첫 선발을 이틀 연속 경험하게 됐고, 7이닝 5피안타 무실점 호투로 프로 첫 승리를 거뒀다. 이후 선발 로테이션을 지켰고, 6월 종료 시점에 7승 2패, 평균자책점 2.15의 좋은 성적을 올리며 7월 1일 감독 추천으로 올스타전에 처음 선출됐다. 제3경기에는 두 번째 투수로 등판해 2이닝 2피안타 무실점을 기록했다. 다만 정규시즌에서는 7월 6일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전에서 직구 최고 구속이 140km/h에 그치는 등 여름 들어 컨디션이 떨어졌고, 8월 10일 오른쪽 어깨 통증으로 등록이 말소됐다. 같은 달 23일 라쿠텐전에서 1군에 복귀했으나 6회 도중 4실점으로 패전투수가 됐다. 이 경기를 포함해 복귀 후 3경기에서 모두 패하는 등 시즌 후반에는 오른쪽 어깨 상태에 시달렸다. 이 해에는 1군에서 24경기(22선발)에 등판해 평균자책점 3.80을 기록했고, 팀 2위인 139⅔이닝을 던졌으며, 가라카와 유키·후루야 다쿠야와 함께 팀 최다인 9승을 올렸다. 포스트시즌에서는 세이부와의 CS 퍼스트 스테이지 1차전에서 4점 앞선 5회말 1사 만루 상황에 두 번째 투수로 등판해 1⅔이닝을 무피안타 무실점으로 막고 승리투수가 됐다. 팀은 파이널 스테이지에서 탈락했지만, 니시노는 중간계투로 4경기에 등판해 평균자책점 1.42, 탈삼진율 9.95로 호투했다. 12월 12일 계약 갱신에서는 구단 사상 최고 인상률인 500% 인상(2200만 엔 증가)의 추정 연봉 2640만 엔에 사인했고, 등번호가 29번으로 바뀐다는 사실도 함께 발표됐다. 2014년에는 전년도 포스트시즌 호투를 인정받아 시즌 초반부터 마무리 투수 전향 방안이 급부상했다. 오른쪽 어깨 상태를 고려해 춘계 캠프는 2군에서 시작했지만, 4쿨부터 1군에 합류했다. 전년도 최다 세이브를 올렸던 마스다 나오야가 오른쪽 팔꿈치 위화감으로 이탈하면서 마무리 투수로 1군 개막을 맞았다. 4월 5일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전에서 프로 첫 세이브를, 18일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전에서 프로 첫 홀드를 기록하는 등 개막부터 5월 3일 세이부전까지 14경기 연속 무실점을 이어갔다. 이후에도 상승세를 유지해 마스다가 복귀한 뒤에도 마무리 자리를 지켰고, 시즌 종료까지 그 역할을 맡았다. 이 해에는 팀 최다인 57경기에 등판해 1승 1패 9홀드, 평균자책점 1.86을 기록했다. 34차례 세이브 기회에서 실패는 3번에 그쳤고, 리그 3위인 31세이브를 올리는 좋은 성적을 거뒀다. 시즌 종료 후에는 일미야구 2014에 출전했으며, 오프 시즌 계약 갱신에서는 3360만 엔 오른 추정 연봉 6000만 엔에 사인했다. 2015년에는 개막 전 일본 대표 강화 경기에 출전했고, 정규시즌에는 마무리 투수로 1군 개막을 맞았다. 세이브 기회에서 한 번도 실패하지 않는 흐름을 이어가며 9월 23일 라쿠텐전에서 개인 최다인 34세이브째를 기록했지만, 9회 2사 상황에서 투수 땅볼 타구가 왼발을 직격했다. 경기 후에는 왼발등 타박상 진단을 받았으나, 다음 날인 24일 재검사에서 왼발 두 번째 중족골 기저부 균열 골절이 확인됐다. 9월 25일 선수 등록이 말소되며 시즌을 마쳤다. 이 해에는 54경기에 등판해 1승 2패 4홀드 34세이브, 평균자책점 1.83을 기록했고, 세이브 기회 실패 0의 좋은 성적을 남겼다. 오프 시즌에는 4000만 엔 오른 추정 연봉 1억 엔에 계약을 갱신했다. 2016년에는 개막 전 일본 대표 강화 경기에 출전했고, 정규시즌에는 마무리 투수로 1군 개막을 맞았다. 감독 추천으로 3년 만이자 두 번째 올스타전에 출전했다. 그러나 교류전에 들어갈 무렵부터 오른쪽 팔꿈치 통증을 느끼기 시작했고, 5월 말부터는 구원 실패가 두드러졌으며 6월 말부터 7월 초까지는 4경기 연속 실점했다. 7월 30일 라쿠텐전에서 세이브에 실패한 뒤 다음 날인 31일 선수 등록이 말소됐다. 가벼운 피로라는 진단을 받았지만 오른쪽 팔꿈치 통증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아 1군 복귀는 약 2개월 뒤인 9월 27일에야 이뤄졌다. 이 해에는 42경기에 등판해 3승 6패 5홀드 21세이브, 평균자책점 3.35를 기록했다. 시즌 종료 후에는 선발 복귀 방안이 떠올랐고, 본인도 ‘돌아가고 싶다’는 뜻을 보이면서 추계 캠프에서 선발 복귀가 결정됐다. 오프 시즌에는 500만 엔 삭감된 추정 연봉 9500만 엔에 계약을 갱신했다. 2017년에는 개막 두 번째 경기인 소프트뱅크전에서 4년 만에 1군 선발 등판을 했으나, 6이닝 4실점(자책점 3)으로 패전투수가 됐다. 선발 후보가 많은 팀 사정상 다음 날인 4월 2일 등록이 말소됐지만, 두 번째 등판이던 같은 달 13일 오릭스전에서는 6이닝 6피안타 1실점으로 호투해 2013년 8월 9일 이후 처음으로 선발승을 올렸다. 그러나 ‘오픈전 때부터 이상했다’고 했던 전년도 오른쪽 팔꿈치 통증이 재발해 5월 3일 이 해 세 번째로 등록이 말소됐다. 오른쪽 팔꿈치 인대 손상 진단을 받았고 한때 수술도 검토했지만, ‘그다지 중증이 아니며 이 정도라면 쉬면서 치료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한 달 반 동안 실전 등판을 피하며 재활에 힘쓴 뒤 2군전 13경기에서 3승 4패, 평균자책점 4.88을 기록했고, 9월 30일 라쿠텐전에서 1군에 복귀해 6이닝 2실점으로 2승째를 올렸다. 이 해에는 5경기 선발 등판에 그쳐 2승 3패, 평균자책점 4.73을 기록했고, 오프 시즌에는 2000만 엔 삭감된 추정 연봉 7500만 엔에 계약을 갱신했다. 2018년에는 중간계투로 개막 1군 엔트리에 들었지만, 시즌 첫 등판이던 4월 4일 오릭스전에서 1이닝 2피안타 2볼넷 3실점으로 부진했고, 같은 달 7일 등록이 말소됐다. 이후 7월 6일 출전 선수로 등록됐다가 8월 6일 말소됐고, 9월 26일 재등록되는 등 시즌 대부분을 2군에서 보냈다. 이 해에는 오른쪽 팔꿈치 통증에 시달리지는 않았지만, 14경기 등판에 평균자책점 6.19라는 성적으로 시즌을 마쳤다. 오프 시즌에는 1500만 엔 삭감된 추정 연봉 6000만 엔에 계약을 갱신했다. 12월에는 미국 시애틀의 트레이닝 시설 ‘드라이브라인 베이스볼’에 직접 예약을 잡고 자비로 방문해 영상 분석을 통한 투구폼 해석을 받았다. 2019년에는 전년도 오프 시즌부터 시작한 폼 수정이 효과를 보면서 직구 구속과 변화구의 예리함이 돌아왔다. 중간계투로 1군 개막을 맞았고, 4월 23일 세이부전에서 3년 만의 홀드, 5월 9일 세이부전에서 3년 만의 세이브를 올리는 등 불펜의 한 축을 맡았다. ‘후반기 추격을 위해서는 선발 투수가 필요하다’는 요시이 마사토 투수코치의 제안에 따라 7월 11일부터 2군에서 선발 조정을 시작했다. 8월 5일 라쿠텐전에서는 5이닝 3피안타 무실점으로 막아 674일 만의 1군 선발 등판을 승리로 장식했다. 같은 달 16일 오릭스전에서는 7이닝 6피안타 10탈삼진 2실점으로 호투해 6년 만이자 두 번째 두 자릿수 탈삼진을 기록했고, 9월 7일 소프트뱅크전에서는 9이닝 114구 4피안타 무실점으로 프로 첫 완투승이자 첫 완봉승을 거뒀다. 이 해에는 37경기(6선발)에 등판해 2승 3패 5홀드 2세이브, 평균자책점 2.96을 기록하며 부활을 인상적으로 알린 시즌을 보냈다. 계약 갱신에서는 1000만 엔 오른 추정 연봉 7000만 엔에 사인했다. 오프 시즌에는 전년과 마찬가지로 드라이브라인 베이스볼에서 자율 훈련을 했다. 2020년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영향으로 개막이 6월로 연기됐지만, 개막 로테이션 진입이 확실시되고 있었다. 그러나 6월 10일 주니치 드래곤즈와의 연습경기 뒤 오른쪽 팔꿈치에 위화감을 느꼈고, 같은 달 16일 요코하마 시내 병원에서 오른쪽 팔꿈치 내측 측부 인대 손상 진단을 받았다. 6월 29일 요코하마 시내 병원에서 토미 존 수술을 받았으며, 다음 날인 30일 구단은 투구 재개가 4개월 뒤인 11월 초가 될 전망이라고 발표했다. 이 해에는 지배하 선수 등록 이후 처음으로 1군 등판 없이 시즌을 마쳤다. 다만 12월 4일 계약 갱신 당시 약 40미터 캐치볼을 실시하는 등 재활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감액 제한 최대치인 25%(1750만 엔 삭감)가 적용된 추정 연봉 5250만 엔에 사인했다. 2021년에는 1군과 2군 모두 공식전 등판 없이 시즌을 마쳤지만, 피닉스 리그에서 실전에 복귀했다. 오프 시즌에는 1000만 엔 삭감된 추정 연봉 4250만 엔에 계약을 갱신했다. 2022년에는 2월 춘계 캠프를 B조에서 보냈으나, 오픈전부터 1군에 합류했다. 이 시즌에는 중간계투로 기용됐다. 조정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모습을 보였지만, 이구치 다다히토 감독이 ‘기본적으로는 선발로 가줬으면 하지만, 끌어올리는 과정에서 중간계투로 시작한다’는 기용 방침을 밝힌 데 따른 것이었다. 이 해 롯데는 전 시즌 24홀드(팀 2위)를 기록한 프랭크 허먼이 퇴단했고, 사사키 치하야(팀 1위)와 가라카와 유키(팀 3위)는 개막에 맞추지 못했다. 게다가 후반기 셋업맨을 맡았던 구니요시 유키도 오픈전에서 불안정한 투구를 이어가면서, 니시노는 3년 만의 개막 1군을 셋업맨으로 맞게 됐다. 3월 27일 라쿠텐전에서 3년 만에 1군 등판을 했고, 4월 12일 소프트뱅크전에서는 948일 만에 승리를 거뒀다. 등판 간격을 배려받으면서도 8회 셋업맨을 맡아 5월 20일 종료 시점에 14경기 등판, 1승 2패 7홀드, 평균자책점 2.57을 기록했으나, 다음 날인 21일 특례 2022로 등록이 말소됐다. 5월 25일 1군에 복귀했지만, 개막부터 존재감을 보였던 도조 다이키와 오노 후미야가 5월 들어 중요한 상황을 맡게 되면서 복귀 이후 니시노는 뒤진 상황에서 등판하는 경우가 늘었다. 도중 합류한 로베르토 오스나가 6월 하순 1군에 합류하면서 승리 패턴이 확립됐고, 니시노의 등판 기회는 줄어들었다. 7월에는 2경기 등판에 그쳤으며, 같은 달 26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으로 특례 2022에 따라 등록이 말소됐다. 8월 14일 2군 경기에서 실전에 복귀했고, 이후 수술 후 첫 연투도 허용되면서 같은 달 23일 1군에 복귀했다. 9월에는 11경기에 등판해 2승 1패 4홀드, 평균자책점 0.84로 안정된 투구를 보였다. 이 해에는 37경기에 등판해 3승 3패 15홀드, 평균자책점 1.73을 기록했다. 오프 시즌에는 750만 엔 오른 추정 연봉 5000만 엔에 계약을 갱신했다. 2023년에는 선발로 전향해 6년 만에 개막 로테이션에 들었다. 개막 네 번째 경기인 닛폰햄전에서 약 3년 반 만에 선발 마운드에 올라 5이닝 4실점을 기록했지만, 1305일 만의 선발승을 거뒀다. 이후 등판 간격을 두고 선발 등판을 이어갔으나, 6월 9일 히로시마전 이후 피로감을 호소해 같은 달 25일 닛폰햄전에 15일 휴식 후 선발 등판했다. 이어진 7월 4일 세이부전에서는 7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이 시점까지 10경기에 선발 등판해 6승 2패, 평균자책점 2.53을 기록했으나, 다음 선발 등판을 준비하던 불펜 조정 뒤 오른쪽 어깨 불편감을 호소해 7월 12일 선수 등록이 말소됐다. 후반기 첫 경기인 같은 달 22일 소프트뱅크전에서 1군에 복귀한 뒤에도 10일 이상 간격을 두고 등판하는 일정이 이어졌다. 정규시즌 전체를 통틀어도 6일 휴식 후 선발 등판한 경기는 1경기뿐이었지만, 이 해에는 18경기에 선발 등판해 8승 5패, 평균자책점 2.69를 기록했다. 소프트뱅크와의 CS 퍼스트 스테이지 2차전에서는 7년 만에 포스트시즌에 등판했으나, 3이닝 3실점으로 강판돼 패전투수가 됐다. 오프 시즌에는 3500만 엔 오른 추정 연봉 8500만 엔에 계약을 갱신했다. 2024년에는 2년 연속 개막 로테이션에 들었다. 8월 3일 선발 등판까지는 ‘등판→말소’가 3차례 있었지만, 15경기에 선발 등판해 8승 6패, 평균자책점 3.63을 기록했다. 직구 컨디션이 좋지 않아 변화구 위주의 투구가 이어졌으나, 시즌 막판 직구의 감각을 되찾았다. 8월 12일 선발 등판 이후에도 ‘등판→말소’가 4차례 있었지만, 5차례 선발 등판 모두에서 QS를 기록했고 그중 3차례는 HQS로 안정적인 투구를 선보였다. 이 해에는 20경기에 선발 등판해 9승 8패, 평균자책점 3.24를 기록했다. 시즌 중 국내 FA권을 취득했으나 오프 시즌에 권리를 행사하지 않고 잔류했고, 구단과는 추정 연봉 1억 5000만 엔에 옵션 조항이 붙은 3년 계약을 맺었다. 2025년에는 개막부터 선발 투수로 활약했다. 6월 14일 시점에는 8경기에 선발 등판해 0승 4패, 평균자책점 3.43을 기록하고 있었으나, 같은 날 오른쪽 전완 굴근군 근육 손상 진단을 받았다.
代表経歴 > 日米野球2014
2014년 10월 9일, 일미야구 2014 일본 대표로 선출됐다는 사실이 발표됐다. 다카하시 도모미와 함께 더블 스토퍼로 지명됐고, 세이브도 기록했다. 제3전에서는 선발 노리모토 다카히로가 5이닝 퍼펙트 피칭, 두 번째 투수 니시 유키가 2이닝 2사사구, 세 번째 투수 마키타 가즈히사가 1이닝 2볼넷을 기록하며 팀이 무안타 무실점을 이어가고 있던 9회에 등판했다. 니시노는 세 타자를 모두 범타로 처리하며 호투했고, 일미야구 사상 최초의 계투 노히트 노런을 달성했다.
代表経歴 > 第1回プレミア12
2015년 2월 16일, GLOBAL BASEBALL MATCH 2015 사무라이 재팬 대 유럽 대표전에 나설 일본 대표로 선출됐다는 사실이 발표됐고, 이 강화 경기에서도 마무리 투수를 맡았다. 같은 해 7월 16일에는 제1회 프리미어12 일본 대표 1차 후보 선수로, 9월 10일에는 같은 대회 1차 등록 명단에 선출됐지만, 이후 골절 부상을 당해 최종 등록 명단 28명에는 들지 못했다.
代表経歴 > 第4回WBC
2016년 2월 15일, 사무라이 재팬 강화 경기 일본 대 차이니즈 타이베이에 나설 일본 대표 26명에 선출됐다는 사실이 발표됐다. 이 강화 경기에서도 마무리 투수를 맡았으며, 제2전에서는 8회 종료 시점에 2점 리드였기 때문에 9회말에 등판했다. 그러나 팀이 9회초 6점을 뽑으면서 세이브는 기록되지 않았다. 제4회 WBC 출전에 의욕을 보였지만, 2016년 정규시즌에는 오른쪽 팔꿈치 통증에 시달리며 대표팀 합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選手としての特徴
포크볼을 결정구로 삼는 우완 투수이다. 포크볼은 카운트를 잡기 위한 낙차가 작은 공과 헛스윙을 유도하기 위한 낙차가 큰 공, 두 종류가 있다. 그 밖의 변화구로는 슬라이더, 커브, 투심을 던진다. 직구 최고 구속은 152km/h를 기록했다. 고교 시절에는 최고 143km/h의 직구와 슬라이더로 타자를 잡아내는 유형의 투수였고, 구종에 포크볼도 있었지만 자신 있는 공은 아니었다고 한다.
人物
애칭은 ‘닛샨’, ‘니이샨’이다. 지배하 선수 1년 차였던 2013년에는 우라와의 구단 기숙사에서 QVC 마린필드가 있는 마쿠하리까지 전철로 통근했다. 시즌 오프 기간을 이용해 보통 자동차 운전면허를 취득했다. 2015년 1월 일반 여성과 결혼했다.
詳細情報 > 記録
첫 기록 투수 기록 첫 등판: 2013년 3월 30일, 대 오릭스 버팔로즈 2차전(QVC 마린필드), 5회초 두 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 2⅔이닝 1실점 첫 탈삼진: 위와 같음, 5회초 사카구치 도모타카를 상대로 기록 첫 선발 등판·첫 승리·첫 선발승: 2013년 4월 8일, 대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3차전(니혼세이시 클리넥스 스타디움 미야기), 7이닝 무실점 첫 세이브: 2014년 4월 5일, 대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2차전(QVC 마린필드), 9회초 네 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해 경기 종료, 1이닝 무실점 첫 홀드: 2014년 4월 18일, 대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4차전(QVC 마린필드), 10회초 네 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 1이닝 무실점 첫 완투승·첫 완봉승: 2019년 9월 7일, 대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23차전(후쿠오카 야후오쿠!돔), 9이닝 4피안타 무실점 타격 기록 첫 타석: 2013년 5월 14일, 대 요미우리 자이언츠 1차전(도쿄돔), 3회초 스기우치 도시야를 상대로 투수 희생번트 그 외 기록 육성선수 출신 최초의 첫 선발 첫 승리: 2013년 4월 8일, 대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3차전(니혼세이시 클리넥스 스타디움 미야기), 7이닝 무실점 육성선수 출신 최초의 1경기 두 자릿수 탈삼진: 2013년 5월 20일, 대 히로시마 도요 카프 2차전(QVC 마린필드), 8⅓이닝 12탈삼진, 2실점 육성선수 출신 최초의 시즌 30세이브: 2014년 올스타전 출장: 2회(2013년, 2016년)
詳細情報 > 背番号
131(2009년~2012년) 67(2013년) 29(2014년~)
출처: 일본어 위키백과 (CC BY-SA 4.0 · 번역 2026-06-18)